실손의료보험금이 진료 후 자동으로 청구되는 '실손청구 간소화'의 시간표가 정해졌다. 실손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의료계의 반발을 딛고 14년 만에 통과되면서 내년 10월25일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은 정해졌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보험사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진료 기록과 보험 청구 정보를 중계해주는 기관을 선정하는 문제다. 비급여 진료 세부 내역을 정부가 파악하는 것을 의료계가 극도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진통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소비자단체(소비자와함께)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의 첫 회의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실손청구 간소화 작업이 개시된 것이다.
그동안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의원, 약국에서 일일이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보험사는 이를 다시 전산에 입력하는 과정을 거치고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실손청구 간소화가 되면 이같은 과정이 필요 없다. 진료비를 납부하면서 실손보험금을 청구해달라고 요청하면 병원에서 바로 보험사로 관련 서류를 전송한다.
이를 통해 보험료를 냈음에도 병원 재방문, 서류 발급 등의 불편함으로 보험금을 포기하는 일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미청구 실손보험금이 2021년 2559억원, 2022년 2512억원, 2023년 3211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병원도 관련 업무 부담이 줄고 보험사도 보험금 지급 심사에 매년 4억장 이상 들던 종이를 절약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일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마지막 과제는 중계기관 지정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차질 없는 운영을 위해서는 보험사 30개와 10만여개의 요양기관을 전산으로 연결하는 전산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이를 위해 의료·보험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전송대행기관을 이르면 연내 선정할 방침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전송대행기관 지정에 대한 의료계와 보험업계 이견은 지속됐다. 정부와 보험업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후보로 거론할 때마다 의료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병·의원급의 비급여 진료명세가 심평원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서다. 이 경우 정부와 보험사가 비급여 정보를 명확히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개발원이나 핀테크 업체들이 차선책으로 거론되지만 연간 1억건 이상 청구되고, 10만개에 달하는 병·의원과 약국 및 30여개 보험사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하고 운영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앞서 의료계는 아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자체부터 거부했다. 환자의 진료정보 데이터를 근거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고 의료 정보도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손청구 간소화 관련법에 대해 위헌 소송까지 검토한다고 밝힐 정도다.
다만 정부가 전송대행기관 '데드라인'을 연말로 잡은 만큼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국회, 의료·보험업계, 소비자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오랜 협의를 거쳐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이 이뤄졌다"라며 "내년 10월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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