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0일, 제22대 총선의 관심사는 주요 정당의 의석 경쟁이다. 총선은 어느새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상대 정당 총선 전략을 분석하며 맞춤형 대응을 준비한다.
문제는 상대 정당과의 경쟁을 넘어서는 ‘제3의 변수’다. 주요 정당의 총선 고민을 증폭시키는 요인, 바로 무소속 변수다. 무소속은 정당 공천을 받지 않고 출마하는 후보자다.
역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지역구 당선자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제21대 총선 때는 대구, 인천, 강원, 전북, 경남 등에서 5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253명의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5명은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지만, 여야 의석 확보 전략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무소속 당선자가 두 자릿수를 넘어서는 경우다. 특히 여야가 자기의 정치적 텃밭으로 여기는 곳에서 무소속 당선자가 이어질 경우 총선 시나리오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확실하게 의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던 지역에서 일격을 당한다면 정치적 내상은 더 크다.
총선 무소속 후보 돌풍에는 정치 공식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소속이 총선 돌풍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무소속 강세를 예견하게 만드는 선행 과정이 있다.
무소속 돌풍의 첫 번째 공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당의 ‘개혁공천’과 관련이 있다. 여야 정당은 총선 때마다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후보자 물갈이에 나선다. 기득권을 혁파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정치 베테랑은 그 본질을 꿰뚫고 있다. 정치적 명분을 갖춘 개혁 프로젝트는 다선 의원들에게 퇴장의 그림을 안겨주는 데서 출발한다.
떠밀리듯이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정당의 내일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았다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어주도록 정치적인 명분을 마련해준다. 다선 의원들이 후배에게 길을 터줄 때의 기본 정치 문법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물갈이는 이와 다르다. 무리수가 동원된다. 중진들의 자존심이 구겨진다. 공천 잡음은 증폭한다. 중앙당에서 실세의 지원을 받는 낙하산 후보가 내려왔을 때 현직 국회의원이 조직을 틀어쥔 채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선거운동은 쉽지 않다.
특정 정당의 초강세 지역이라고 해도 공천 파동이 일어난 지역은 해당 후보의 낙선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확인된 장면이다. 당시 무소속 당선자는 무려 25명이었다. 제3당(자유선진당)이 지역구에서 14개 의석을 얻었는데 무소속 국회의원은 그보다 두 배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의 중심 서울(48개 지역구)에서는 단 한 명의 무소속 당선자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많은 무소속 국회의원은 어디에서 배출된 것일까. 영남권과 호남권에서 무더기로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정치적 텃밭에서 일격을 당했다.
부산과 경북에서 각각 5명, 전남과 전북에서 각각 3명과 2명의 무소속 당선자가 나왔다. 다른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도 무소속 당선자가 추가됐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은 영남권에서 13명, 민주당은 호남권에서 6명의 무소속 당선자가 나오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한 석이 아까운 총선 상황에서 양당을 아프게 한 장면이다.
무소속 초강세 배경은 공천 파동이었다. 한나라당은 친박-친이 갈등이 격화하면서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 탈당과 함께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도 개혁 일환으로 호남 물갈이 공천을 단행하다가 현역 의원들이 무소속 출마로 반발하면서 애를 먹었다.
무소속 돌풍을 위한 또 하나의 공식은 지역 기반이 탄탄한 현역 의원들의 총선 출마 봉쇄다. 본인은 출마 의향이 있는데 중앙당이 힘으로 눌러서 공천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다. 중앙당은 일단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강요하는데,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공천 탈락’이라는 철퇴를 내린다.
문제는 현역 의원 가운데 무소속으로 나와도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이들은 중앙당의 이런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당이 총선 성적이 아쉬우면 자기를 공천하려 할 테고, 끝까지 공천에서 배제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무소속으로 나가 본인 능력으로 국회의원이 되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라는 인터뷰 발언으로 논란의 초점이 됐다. 낙동강 하류는 영남권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인식되면서 여당 국회의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영남권 물갈이를 의도한 행동 아니냐는 해석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발언의 수습에 공을 들였지만, 논란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영남권 국민의힘 다선 의원 중에서는 지역구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정치인들이 여러 명 있다. 이들이 무소속 출마를 고민하면 국민의힘의 총선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 텃밭에서 공천 잡음이 번지지 않도록 제어해야 하는 상황, 여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정치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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