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쏟아지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기존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될 경우 금리인상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부채뿐 아니라 소비, 투자, 금융 등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이미 기준금리와 별개로 시중금리도 오르고 있기 때문에 한은이 금리인상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2일 한국은행과 정부에 따르면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 공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대출 제도는 금융위원회 등 정부 소관이지만 한은도 거시 경제 관리 역할을 하는 만큼 가계부채 감소에 적극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3일 한은 국정감사 때 '가계부채가 안 잡히면 금리인상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은이 물가도 아닌 가계부채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가계부채 증가세가 우려된다는 의미다.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루드비히 스트라우브 하버드대 교수,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는 2021년 1월 발표한 논문(Indebted Demand)에서 "완화적 통화정책과 같은 확장 정책은 미래의 부채 수요를 희생시키면서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단기 붐을 일으킨다"며 "이 경우 경제는 부채로 인한 유동성 함정에 갇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채를 늘리면 단기적으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고소득자의 저축이 늘면 자연이자율이 하락해 또다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부채를 통한 경기 부양책은 향후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려면 한은이 한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한은이 인상할 수 있다고 말로만 하고 있지만 실제 금리를 올려서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DSR 등 규제 강화는 새로운 대출만 억누르고 기존에 받은 대출은 줄이지 못한다"며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은 기존 부채에 대한 조정이 포함돼야 하기 때문에 결국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금리를 어느 정도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게 정책적 수단을 같이 쓰면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는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 집값 조정을 통한 디레버리징을 추진하더라도 소비 등 경제적 충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고금리 영향으로 국내 대출 금리도 상방 압력을 받고 있는 만큼 굳이 가계부채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글로벌 채권시장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과 미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 영향 등으로 현재 4.9%의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이는 우리나라 국고채, 은행채, 대출 금리를 연쇄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국제유가나 물가 불안으로 한은이 0.25%포인트 정도 금리를 올릴 필요는 있지만, 가계부채는 최근 조달 금리 상승으로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올라가고 있어 기준금리로 대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대신 정부는 시장 금리가 오르는 걸 막으면 안 되고, 50년 만기 대출 상품 등 DSR 규제를 벗어나는 예외를 줄여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대출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처럼 소비, 투자, 수출 상황이 어려울 땐 쉽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통해 가계부채를 이론적으로 조정할 수는 있는데, 엄청나게 올리거나 엄청나게 내려야 한다"며 이로 인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장 획기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지만, 현 경제 상황을 보면 상하방 요인이 혼재해 쉽지 않다"며 "취약차주와 부동산 PF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한은 총재도 미시적인 조치부터 하면서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가계부채를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신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인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리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용상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인 해법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꺾는 것"이라며 "고금리 상황에서 대출받아 집을 사는 이유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때문인데, 이 기대를 정부 차원에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올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장에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는데 그래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주병기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쪽에 부실한 대출을 정리하고, 부동산 시장도 자정 기능에 따라 매물이 나오고 가격이 하락하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재준 교수도 "우리나라는 아파트 선분양 제도와 DSR 예외 규정, 부동산 PF 시장 등 가계부채 비율을 높이는 요인들이 많다"며 "이런 부동산 관련 제도를 전반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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