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씨(32)는 '숏폼' 동영상 마니아다. 한정된 시간 내에 재밌는 콘텐츠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제 길고 지루한 영상은 못 보겠다”며 “영화관에 간 지도 오래됐고, 드라마를 언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숏폼으로 불리는 짧은 영상만을 시청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는 보통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을 말한다. 틱톡, 유튜브 쇼트, 인스타그램 릴스 등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제공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는 예능 프로그램 주요 장면이나 사건사고 등 짧은 영상을 넘어 분량이 긴 영화·드라마 요약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제 국민 상당수는 영화·드라마 요약본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7월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9.7%가 요약 영상을 자주 본다고 응답했다. 영상 콘텐츠 소비에 있어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 재생 속도보다 빠르게 영상을 보는 세태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빠른 영상 시청을 더 선호했다. 본래의 영상 속도를 답답하게 느낀다는 비율은 20대 31.6%, 30대 27.6%, 40대 25.2%, 50대 18.4%로 집계됐다. 20·30대는 빨리 감기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고, 속도를 높였을 때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고 생각했다. 배속 시청은 쏟아지는 영상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응답자들은 주로 결론을 빨리 알고 싶거나(41.6%, 중복응답), 봐야 할 작품들이 많은 것에 비해 시간이 너무 짧거나(36.5%), 다른 할 일이 많은데 봐야 할 영상이 많기 때문에(31.9%) 배속 기능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에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가 영화관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영화시장의 관람객 수는 5839만명으로 2017~2019년 상반기 평균(1억99만명)의 57.8% 수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짧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태가 숏폼 열풍에 반영돼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지나친 숏폼 콘텐츠 위주의 시청은 경계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짧은 영상의 반복 시청은 도파민 분비를 지속해서 추구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긴 영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며 “좋은 현상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숏폼 콘텐츠에 길들면 긴 글과 영상을 못 보게 되고, 문해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와 다른 젊은 세대의 특성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숏폼 콘텐츠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만족감을 얻는 것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다”며 “긴 시간을 생각하고 힘을 쏟는 것을 힘들어하는 일종의 사회 불안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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