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 마약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한국은 이미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잃은 지 오래고, 마약류 범죄도 일상화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생활이동인구가 많고, 유흥업소와 병·의원이 몰려 있는 강남구는 마약류 유통과 오남용이 심각한 지역이다. 배우 이선균씨와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연루된 마약 사건에도 의사가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고, 과거 유명한 마약 사건에도 의사와 병·의원은 단골로 등장했다.
지난 4월에는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까지 있었다. 강남구의회는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을 계기로 마약류 오남용과 확산 방지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미 올해 초 구의회 의원연구단체인 ‘마약근절대책연구회’를 만들었고, 지난 몇 개월간의 정책연구 끝에 최근 ‘강남구 마약류 및 유해약물의 오남용 방지와 안전 대책 연구 결과’를 내놨다.
강남구의회에서 만난 박다미 의원(마약근절대책연구회 대표)은 "범죄 집단을 통해 은밀히 유통된다고만 생각했던 마약범죄가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쳐 있고,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문제라고 생각해 마약 문제에 집중하게 됐다"며 "강남구는 상업지역 관할 파출소 1개당 마약 관련 신고 건수가 타 자치구 경찰서 전체 건수와 맞먹을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연구도 강남의 마약류 확산 현황이나 실태보다는 실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방향에 집중했다. 정책개발 연구용역은 한국정책경영연구원에서 맡아서 했다.
손민기 의원(연구회 간사)은 "연구 결과 범죄조직이나 연예계, 유흥업 종사자 내부의 마약범죄보다 더 심각한 게 평범한 일반인 사이의 향정신성의약품 유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병·의원의 마약류 오남용과 확산 방지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의료관광특구인 강남구에는 서울시 전체의 15.2%에 달하는 2819곳의 병·의원이 몰려 있고, 성형외과는 서울시 전체의 70.5%인 440곳이 있다.
손 의원은 "강남구 전체 병·의원의 86%인 2396곳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하고 있지만 강남 구청 보건소에서 일하는 마약류 감시원은 7명에 불과하다"면서 "7명이 이렇게 많은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두 의원의 이런 지적은 근거가 있다. 마약근절대책연구회가 강남·수서경찰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 평균 강남구 향정신성의약품에 의한 마약류 사범은 78.6%로 대마(17.5%), 마약(3.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지난해 20대의 강남구 마약류 연령별 단속 비율은 55.2%로 전국 20대 5년 평균 25.7%보다 두 배 이상 높아 심각성을 더 했다.
박 의원은 "병·의원의 밀집성이 향정신성의약품 오남용과 마약류 확산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의료용 마약류 취급관리 의무 감시역량을 늘려 약물 오남용을 막고, 강남권에도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세워 예방과 교육, 홍보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연말까지 활동하는 마약근절대책연구회에는 전인수·한윤수·복진경·김현정 의원이 함께 활동한다. 마약근절대책연구회 대표와 간사로 뛰는 박다미·손민기 의원을 지난달 25일 강남구의회에서 만났다.
‘마약근절대책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강남구의회 박다미 의원(사진 오른쪽)과 손민기 의원(왼쪽)은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가장 시급하고도 실질적인 마약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로 꼽았다. 박 의원과 손 의원은 "보건소 감시인력을 늘리고, 강남권에도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세워 예방과 교육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관내 진선여고와 대치동 먹자골목에 유흥업소 전단지가 무차별 살포돼 청소년 유해환경을 차단하는 활동을 하다 올해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마약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됐다.
지난 4월 구의회에서 강한 의지를 갖고 ‘강남구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강남구 차원의 독자적 정책 수립과 법·제도적 근거 마련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됐다.
▲강남구의회가 처음일 거다.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의원연구단체(마약근절대책연구회)를 만들어서 정책용역으로 ‘강남구 마약류 및 유해약물의 오남용 방지와 안전 대책 연구 결과’를 최근에 냈다. 지난 7월에 착수보고회, 8월에 중간보고회를 거쳐 10월에 최종보고서를 냈는데 중간보고회 때는 구청 관계자와 전문가, 지역 주민 등 100여명을 모셔 토론도 했다.
내용을 보고 다들 놀라셨고, 부모님들은 쉬쉬하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남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숨길 게 아니라 재활, 치료, 예방, 교육 활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렸다. 서울시에서 무료로 마약 익명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홍보했다.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설문조사도 했는데 부득이하게 마약에 접촉했을 때 어떤 번호로 전화해서 상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굉장히 놀랐다. 인식 개선과 홍보가 정말 필요하다.
▲예방 교육, 인식 개선 캠페인과 함께 마약 중독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다. 강남권에 이런 시설이 필요한데 정작 필요한 곳에 없다. 땅값이 비싸고, 불편한 시설로 보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는데 우리 아이들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강남구청이 결심해야 할 문제다. 구청에서도 지금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특정 구청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시의 의지와 도움도 필요하다. 피해자가 남이 아니라 내 가족, 우리가 피해자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고(약물에 취한 채 차를 몰다가 20대 행인을 치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사건)와 같은 약물 오남용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다. K-뷰티가 활발하지만, 그 뒤에 숨은 약물 오남용 중독 실태는 실제 알려진 것보다 매우 많다.
▲경찰서 자료를 받아보니 강남구 20대 단속 비율이 55%나 돼 전국 평균의 2배가 넘었다. 강남구에서 단속되는 사건이 모두 강남구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국 단속 비율과 비교해 강남구 20대 비율이 상당히 높은 건 사실이다. 20대가 많이 찾는 클럽이나 유흥업소가 밀집돼 있다는 지역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또 몸매나 미용에 관심이 많은 게 20대고, 살 빼는 약, 성형 마취에 쓰이는 프로포폴 등이 많다. (마약류를) 처음 접하게 되는 경로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65% 정도가 병·의원이라고 하더라. 그 뒤에 구매도 병·의원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호기심만으로 접근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병원에서 주는 거니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그다음부터는 몸이 원하니까 (불법적인 경로로) 두 번 세 번 구매를 반복하게 된다. 진정제가 25%인데 이것도 병·의원 약이고, 프로포폴도 마약류로 지정되기 전에는 마취제로 사용됐으니 사용 빈도가 높다. 살 빼는 약도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데 이 세 가지를 합치면 굉장히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오남용이란 건 적정 기준 이내면 약이고, 그 기준 이상이면 마약이 된다. 투여량을 의사가 처방하는 건데 거기에 따라 마약이냐 아니냐 기준, 오남용 여부 기준이 된다.
강남구의회 의원연구단체인 마약근절대책연구회는 최근 103쪽 분량의 정책개발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강남구 마약류 오남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다.사진=김민진 기자 enter@
원본보기 아이콘▲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범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하되, 어린 학생들에게 마약의 위험성을 철저히 교육하고 부모들도 예방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독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재활과 치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약류 근절은 강남구만의 일도 아니고 강남구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경찰, 사법기관, 교육계, 의료계 등이 함께하는 마약류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상호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
▲전국에서 병·의원이 가장 많은 강남구 보건소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마약류를 취급하는 병·의원에 대한 점검과 단속이다. 병원 숫자에 비해 보건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마약류 감시원을 충원하고 의료용 마약류 취급에 대해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언론에도 의료용 마약류의 불법 처방과 유통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단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의사회 및 약사회를 중심으로 의료용 마약류 처방 및 복약지도 등에 대한 자율규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이걸 준수하겠다는 공식적인 선언 등 의료계 차원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고 교육할 수 있는 예방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학부모 마약예방단을 설립해 예방 캠페인, 교육 강사 활동 등도 펼치고 있더라. 우리 구민들의 높은 관심을 고려하면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제도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거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쉽게 시작하는 살 빠지는 약, 잠 오는 약, 집중력 강화 약 등이 나중에는 내가 마약을 유입하는 통로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미국 등에서 큰 위험이 되는 좀비 마약 펜타닐도 처음에는 얀센이라는 대형 의약 회사에서 개발한 진통제로 각광 받았다. 중독성이 있는 약물은 좀 더 처방이 제한돼야 한다. 주민들도 복용할 때 위험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은 우리 스스로도 조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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