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졸라맨 가계]월급 2.1% 오를때 체감물가 4.6% 껑충…지갑이 말랐다

물가 급등에 실질임금 반년째 하락세
월급 늘어도 쓸 돈 오히려 더 줄어
고물가 내년까지 지속 가능성 높아
소비심리 줄면서 내수 침체 우려도

대전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20대 A씨는 올해 연봉을 3% 가까이 인상했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월급 인상분은 세금을 제하고 약 12만원 남짓. 올해 초부터 무섭게 오른 물가를 고려하면 생활 수준은 이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A씨는 "마트에서 올해 초 오른 생필품 가격이 3개월 만에 또 인상된 걸 보고 더 저렴한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며 "늘어나는 각종 공과금에 점심 한 끼에 만원이 넘는 식료품비까지 합치면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오르는 것 같아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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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따른 서민들의 체감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연봉 인상률보다 물가 상승 폭이 가팔라지면서 생활 수준이 악화하고 있는 탓이다. 이는 올해 들어 실질임금이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서 나타난다. 실질임금이란 표면적으로 받는 명목임금에서 물가상승을 고려한 임금의 가치로, 근로자가 실제 체감하는 임금 수준을 말한다.


6일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근로자 1명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353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하락했다. 이 기간 명목임금이 2.1% 상승하는 동안 소비자물가는 3.7% 오르면서다. 고물가에 월급의 가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 3월(-2.6%) 마이너스를 시작으로 4~5월(각 -0.2%) 소폭 둔화했다가 6월부터 다시 하락 폭이 커졌다. 하반기 실질임금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물가가 저점을 찍은 7월(2.3%) 이후 점차 반등 추세를 보이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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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닌 생활물가지수와 비교하면 서민들의 지갑 두께는 더 얇아진다. 이들이 주로 구매하는 144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4.6%로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3.8%)보다 0.8%포인트 높았다. 생활물가지수는 1월(6.1%)부터 7월(1.8%)까지 지속적으로 둔화했지만, 8월(3.9%)과 9월(4.4%) 등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상승 폭이 커졌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를 끌어 올린 주요 품목은 사과(72.4%), 상추(40.7%), 수박(36.1%) 등 신선과일 및 채소를 비롯해, 택시비(20.0%), 전기료(14.0%), 도시가스(5.6%) 등 공공요금은 물론 미용료(5.6%), 약국조제료(3.6%) 등 서비스까지 전체 144개 품목 중 123개(85.4%) 품목이 올랐다. 정부는 10월부터 농산물 가격 하락을 전망했지만, 먹거리 물가는 오히려 상승 폭이 커져 서민 부담이 가중됐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가처분소득 역시 쪼그라들었다. 가처분소득이란 개인소득에서 세금, 사회보장분단금, 이자비용 등 비소비성 지출을 제외한 돈이다. 가처분소득의 감소는 소비구매력을 저하하거나 저축 등 여유 자금을 부족하게 만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 평균은 383만1000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8% 줄었다. 가처분소득 증감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21년 2분기(-1.9%) 이후 8분기 만에 처음이다. 정부에 낼 세금이 작년 대비 크게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실질임금의 감소가 가처분소득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가처분소득이 줄었지만, 소비지출은 4.8% 증가했다. 일부 여윳돈이 부동산 투자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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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임금이 적은 저소득층이 물가 상승 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올해 기준 상용근로자 월평균 임금 증가율은 임시일용근로자 임금 증가율을 7개월 연속(1~7월) 앞섰다. 올해 들어 8월에서야 임시근로자 임금 증가율(2.5%)이 상용근로자 임금 증가율(1.3%)보다 높았을 뿐, 임시근로자 임금(176만2000원)은 상용근로자 임금(397만원)의 44.3% 수준에 불과했다. 절대적인 임금 규모가 작을수록 먹거리 가격의 500~1000원 수준의 인상에도 지갑을 닫을 확률이 커진다.


이는 고물가에 따른 소비 심리가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9.7로 4개월 만에 100 밑으로 떨어졌다. 소비심리가 비관적으로 전환했다는 의미인데, 지금처럼 수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자칫 고물가→소비 위축→내수 침체→성장률 하락으로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내년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2일 기준(현지시간) 4.669%로 소폭 하락했지만, 국채 시장의 급격한 변동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정상의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정부 중심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전쟁의 장기화 등 지금처럼 물가 상승 압력 요인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을 경우, 경기 개선의 제약점으로 장기간 작용할 우려가 높다"며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처분소득 하락 등 서민경제 부담을 덜 수 있는 정부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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