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곳이 없어요"…서울시, 길거리 쓰레기통 다시 늘린다

3년 만에 2000개 가까이 줄어
커피잔·담배꽁초 등 투기 기승
향후 점진적 확대…"필요성 입증"

최근 서울 시내에서 공용 쓰레기통을 찾기가 쉽지 않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실시 이후 생활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 차원에서 쓰레기통을 줄여온 결과다. 그러나 길거리에 일회용 커피잔이나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가 마구 버려지고,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쓰레기통 설치로 정책 방향이 다시 바뀌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을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을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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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에서 만난 박모씨(24)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강남에 자주 오는데 길가에 쓰레기통이 많이 없다”며 “버스를 타야 할 때는 굉장히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모씨(30)는 “담배를 피우고 난 뒤에 버릴 곳이 마땅치가 않다”며 “솔직히 그냥 바닥에 버린다”고 말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부터 신논현역 7번 출구까지 거리는 약 550m이다. 두 역 사이에 있는 버스정류장만 12곳에 달한다. 그러나 인도에 설치된 쓰레기통은 3개뿐이다. 서울시는 2018년 1월부터 시내버스 안전 운행기준 조례를 개정해 시내버스 내 음식물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쓰레기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전 화단, 가로수 밑, 골목길 등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고 있다. 버스 승객이 아니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강남역 일대 쓰레기를 환경미화원들이 한차례 치우고 나니 수레에는 플라스틱 커피잔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가득 쌓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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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서울 시내 공용 쓰레기통은 최근 3년 동안 2000개 가까이 줄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용 쓰레기통 개수는 2019년 6940개에서 2020년 6242개, 2021년 5613개, 2022년 4956개로 계속 감소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는 지난해보다 121개 더 줄어든 4835개로 집계됐다. 장소별로 버스정류장은 2019년 1712개에서 2020년 2926개로 늘었다가 올해 9월 다시 2548개로 줄었다. 지하철역 입구 쓰레기통은 2019년 853개에서 올해 373개로, 도로변 쓰레기통도 같은 기간 4375개에서 1914개로 감소했다.


공용 쓰레기통 설치는 한동안 논란거리였다. 2012년 서로 인접한 강남구와 서초구가 정반대의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강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강남구는 쓰레기통을 설치·유지했던 반면 서초구는 쓰레기통 제로 정책을 선언했다. 당시 서초구는 쓰레기통이 있으면 도로가 더 지저분해진다는 일종의 ‘깨진 유리창 이론’(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주변으로 범죄가 확산한다는 범죄학 이론)에 근거한 논리를 펴며 쓰레기통을 모두 없앴다. 그러나 서초구 지역은 쓰레기 무단 투기로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4년 뒤인 2016년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인 ‘서리풀컵’을 도입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커피 테이크아웃 문화가 확산하면서 환경이 변화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공용 쓰레기통이 지속해서 줄어들면서 자치구마다 이처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곳곳에서 쓰레기 무단투기가 심각해지자 쓰레기통을 다시 늘리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악구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 등에서 쓰레기 무단투기가 많아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민원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며 “차라리 쓰레기통이 있으면 그 주변에만 버려져 도시미관이나 청소 측면에서도 낫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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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자 서울시는 공용 쓰레기통을 올해 연말까지 5500개, 2024년 6500개, 2025년까지 750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쓰레기통 설치·철거는 구청별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공용 쓰레기통 인근 상인 등의 철거요청을 반영하면서 결과적으로 쓰레기통이 너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정류장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쓰레기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고, 향후 설치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자치구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길거리 쓰레기 투기 방지와 관광객 편의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용 쓰레기통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온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공용 쓰레기통의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본다”며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관광객이다. 쓰레기통이 없으면 외국인들은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모르고, 길가에 그냥 버리게 된다. 세계적으로도 도시미관 차원에서 공용 쓰레기통은 이미 부활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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