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경미한 ‘스토킹행위’도 누적되면 공포심 증폭"… '일련의 스토킹행위' 구성

전처 찾아가 현관문 두드린 전 남편, 징역 10개월 확정
재판부 "스토킹행위 반복, 상대방 불안감 비약적 증폭"

경미한 수준의 스토킹 행위라도 반복돼 누적될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심이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경.

대법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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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 15일부터 약 한 달간 6회에 걸쳐 이혼한 전처 B씨의 집에 찾아가 B씨와 자녀를 기다리거나 현관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접근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2017년 11월 A씨와 이혼한 후 혼자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1년 A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고, 이후 A씨를 상대로 자신과 자녀들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하는 등 A씨를 만나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재판에서는 스토킹범죄의 성립을 위해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불안감 내지 공포심을 일으킬 것을 필요로 하는지, A씨의 행위가 객관적·일반적 관점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의 행위 모두가 피해자에게 현실적 불안감·공포감을 일으켰을 것으로 보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2심 역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인 경우에는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과 피해자를 위해 300만원을 공탁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고려해 징역 10개월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객관적·일반적으로 볼 때 이를 인식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평가될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불안감 내지 공포심을 갖게 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하고, 일련의 스토킹행위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스토킹범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가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지위·성향,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행위자와 상대방의 언동, 주변의 상황 등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스토킹행위는 그 행위의 본질적 속성상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반복돼 누적될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원심이 스토킹처벌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객관적·일반적 관점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며 "또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들도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스토킹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최초 사안"이라고 말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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