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기조가 길어지고 경제 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며 '달러 독주'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가 끝날 때까지는 강달러 기조가 한풀 꺾일 거라고 내다봤다. 시장금리 상승효과로 연준 내에서 추가 금리 인상 없이도 긴축 수준이 강화됐다는 의견이 나왔고, 소비와 고용 둔화에 따른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16일 아시아경제가 국내외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은행 및 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 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미국 강달러 완화 예상 시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9명(40%)이 내년 2분기라고 답했다. 내년 1분기라고 전망한 전문가는 4명(18%)으로 바로 뒤를 이었다.
지난주 미국에서는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물가 지표가 나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재차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커지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로 잠깐 떨어졌던 미국 장기채 금리가 다시 급등하고 환율은 1350원대로 상승했다. 105선으로 내려갔던 달러인덱스도 106으로 다시 올랐다.
경제지표에 따라 달러화도 일희일비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최근 강달러 현상은 양호한 미국 경제와 높은 미국채 금리에 기반한 것이므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이후 펀더멘탈 안정과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가시화되면 달러가 본격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소비 증가세가 여전하지만, 고금리 장기화와 초과저축 소진 등의 상황이 더해지면서 경기둔화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긴축 강도가 유지되면서 경기가 조금씩 둔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2분기쯤 금리 인하가 가능할 텐데, 달러 강세 흐름이 꺾이는 시점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이 미국 하위 80% 소득 계층이 초과저축을 다 썼다고 발표하는 등 향후 소비 심리가 꺾일 거라는 시그널들이 나오고 있다"며 "올해 연말에서 내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미국의 소비 경기가 둔화하고, 미국 자동차 노조 파업 영향으로 실업자도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물가 리스크가 재부상했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물가상승률)가 둔화세를 지속하는 등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 달러화 가치 조정에 더 빠르게 영향을 미칠 거라 보는 시각도 있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근원 CPI가 내려가고 있고, 물가가 크게 올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은 기준금리를 다 올렸다고 볼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내년 1분기 안으로는 강달러 기조가 꺾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내 완화될 거라고 보는 전문가도 3명(14%) 있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형국이었는데, 시장의 인식이 12월 FOMC까지 실제 인상 단행이 어렵다는 방향으로 전환될 경우 달러 강세 분위기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연준은 내년 기준금리 50bp(1bp=0.01%포인트) 인하를 제시했는데, 이 스탠스가 좀 더 완화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달러 약화는 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여 달러화는 내년 상반기까지 안정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부연했다.
미국 장기물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인식 역시 질주하는 달러의 고삐를 죌 재료다. 통상 미국 국채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김 연구원은 "미 국채 10년물은 지난 6일 장중 4.88%까지 오르며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바 있는데, 이미 금리 기준으로 한 번 고점을 형성한 것으로 본다"며 "변동성은 있겠지만 금리 하단을 조금씩 낮춰갈 것이고, 외환시장도 거기에 반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도 "9월 CPI 발표 직후 10년물 수익률이 한 번 더 튀어 올랐지만, 달러 강세가 그만큼 심하지 않았다"며 "단순하게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이라고 달러가 계속 강세로 가지는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불확실성 등에 따라 지금의 긴축 기조가 길어질 것으로 보고 내년 3·4분기에나 강달러가 저물 것이라는 의견도 소수(3명) 있었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글로벌연구실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현 기조가 유지된 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됨에 따라 채권금리가 하락하고, 원화는 절상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고금리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에 그 속도는 완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