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공직자가 새해 분위기에 젖어 드는 1월을 앞두고 작별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4년마다 반복되는 공직자 줄사퇴의 행렬. 그들은 왜 공직을 떠나려는 것일까. 전국의 공직자들이 그날을 앞두고 사표를 낸다고 하는데 ‘작별의 1월’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1월의 에피소드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 권력에 대한 욕구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정치에 뜻이 있는 공직자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누구보다 풍부한 행정 경험은 정치를 꿈꾸는 공직자들의 자신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안정된 공직 사회를 벗어나 정글에 비유되는 여의도 정치에 연착륙하려면 필요한 게 있다. 바로 국회의원 배지다. 전국 253개 지역구(최근 총선 기준)에서 새로운 지역 국회의원을 뽑지만, 아무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이 지역구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무소속 출마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유력 정당 공천을 받아야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직자들이 총선 출마의 뜻을 실천하려면 그날이 오기 전에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공직선거법 제53조에 규정된 공무원 등의 입후보 제한 규정과 관련이 있다.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도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다.
내년 4월10일 열리는 제22대 총선의 경우 1월11일이 데드라인이다. 총선에 출마할 뜻이 있다면 이날까지는 무조건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대통령실 고위 공직자, 정부의 장·차관이나 실·국장도 마찬가지다. 일부 정무직 공무원을 제외하면 모두 이 규정을 적용받는다.
가장 최근 열린 제21대 총선은 2020년 1월16일이 데드라인이었다. 그날을 앞두고 실제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줄사표를 냈다. 선거 준비 기간을 고려한다면 1월 데드라인까지 기다리는 것도 위험 부담이 있다.
행정은 자기들이 베테랑이지만, 총선이라는 무대는 산전수전 다 경험한 정치 베테랑들이 즐비한 공간이다. 현역 국회의원을 상대로 공천 경쟁에 나서려는 공직자라면 총선이 열리기 한참 전에 퇴직해 지역구 표밭 다지기에 나서야 한다.
말은 쉽지만 20년, 30년 공무원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온 이가 선거 출마를 위해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의지는 물론이고 가족 등 주변인의 호응과 응원이 뒤따라야 가능한 선택이다.
실제로 공직자 본인은 선거 출마 의지가 분명하지만, 가족이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출마의 뜻을 접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족 입장에서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선택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위 공직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줄사퇴를 선택할 수 있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정당의 공천을 받지 않더라도 당선을 자신할 만큼 본인 경쟁력이 출중하거나 주요 정당 공천에 대한 확약을 받은 경우다.
여야 정당은 총선을 앞두고 외부 영입에 공을 들인다. 정치의 때가 덜 묻고, 이른바 스펙이 좋은 인물을 찾기 마련인데 도덕성과 자질, 능력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고위 공직자 출신은 영입 경쟁에서 선호하는 직업군이다.
여야 정당의 주요 영입 명단에 포함돼 입당 환영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는 공직자 출신 후보들은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 이른바 정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 후보로 나서게 될 때는 사실상 ‘공천=당선’ 등식이 형성되기도 한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둔 올해 가을은 고위 공직자들의 정치적 꿈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번 총선에는 어떤 공직자가 국회의원 대열에 합류하게 될까. 내년 1월11일까지 누가 공직에서 물러나고, 여의도 정치에 도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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