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반기만 300건"…끊이지 않는 대형마트 산업재해

주요 대형마트 산업재해 매년 증가
올해 상반기만 300건…역대 최고치 예상
신규 채용 감소·업무 불일치 주요 원인 꼽아
전문가 "업무 선호도 청취 등 합의점 찾아야"

산업재해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 상황에도 주요 대형마트(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 노동자들은 코로나 이후 대형마트가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이면서 한 사람당 맡은 업무량이 많이 증가했고, 대규모 ‘점포 정리’로 인해 기존 업무가 아닌 새로운 업무에 투입되는 이들이 늘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업무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대형마트의 인력 및 점포 정리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더라도, 전환 배치 과정에서 개인별 선호 업무를 조사하는 등 마트가 최대한 노동자의 근무 여건을 보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독] "상반기만 300건"…끊이지 않는 대형마트 산업재해 원본보기 아이콘

올해 상반기만 301건…역대 최고치 예상

26일 아시아경제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제출받은 ‘대형 유통업체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발생한 주요 대형마트 산업재해 건수는 301건으로 집계됐다. 대형마트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2017년 192건에서 2022년 539건으로 5년 만에 180% 넘게 오르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19로 대형마트들의 온라인 전환과 매장 구조조정이 활발해진 2021년(531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만 300건을 넘어선 탓에 또 한 번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독] "상반기만 300건"…끊이지 않는 대형마트 산업재해 원본보기 아이콘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산업재해를 사고 유형별로 살펴보면, 경량 사고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가장 많이 발생한 사고 유형은 ‘넘어짐’으로 전체 가운데 26.6%를 차지했다. 이어 ‘부딪힘’(10.2%), ‘떨어짐’(9.4%), ‘절단·베임·찔림’(9.0%)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비중이 높진 않았지만 매년 사망 사고도 꾸준히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과 2018년엔 롯데마트에서 각각 한 건씩, 2019년과 2020년엔 홈플러스에서 각각 한 건씩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사고는 대부분 마트 내 물류 창고에서 일어났다.


회사 별로는 주요 대형마트 3사 가운데 홈플러스의 발생 건수가 가장 많았다.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홈플러스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총 1112건으로 이마트(970건)와 롯데마트(455건)보다 높았고, 올해 상반기까지 집계된 발생 건수 역시 153건으로 이마트(102건), 롯데마트(46건)를 앞질렀다.

"신규 인력 채용 늘리고 기존 업무 보장해야"

마트 노동조합 구성원들은 산업재해 증가의 배경으로 ‘신규 채용 감소’와 ‘인력과 업무 불일치’를 꼽고 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온라인 소비가 활발해지자 주요 대형마트들을 중심으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는 경향이 뚜렷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 한 명이 소화해야 할 업무량이 늘었고, 대형마트가 대대적인 점포 정리에 들어감에 따라 다른 점포에 배치된 노동자들이 낯선 업무에 투입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간 주요 대형마트의 임직원 수 추이는 공통으로 하락하는 모습이다. 3사 가운데 가장 임직원 수가 많은 이마트는 2019년 2만5779명에서 올해 상반기 2만3295명으로 5년간 9.6% 줄었고, 같은 기간 롯데마트도 1만2985명에서 1만986명으로 15.39% 줄었다. 홈플러스 역시 2만2000명에서 2만명으로 9% 감소했다.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2020년부터 ‘통합 부서 운영’이라는 제도로 점포의 캐셔, 식품 진열, 물류 배치 등 고정 담당 업무를 보던 직원들의 부서를 없애고 점포 운영 상황에 따라 업무를 유동적으로 배치하는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사측은 업무 효율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이를 두고 노조 측은 ‘인력 돌려막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독] "상반기만 300건"…끊이지 않는 대형마트 산업재해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변화된 시대 흐름에 따라 대형마트가 인력 및 점포 조정에 나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측과 노동자가 최대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대형마트 하나가 문을 닫으면 해당 점포의 마트 노동자 수백 명이 길을 잃는다. 같은 조건으로 근무하게 되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대부분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점포에서 익숙지 않은 업무에 투입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점포 정리로 인해 불가피하게 전환 배치를 시행해야 하는 경우엔 개인별 희망 업무를 청취하는 등 최대한 노동자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으로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업재해 위험성이 높은 물류센터, 지하 주차장 등 특정 장소부터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환기가 잘 안 되는 물류센터와 주차장은 여름철 노동자 사망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지난 6월 한 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다 사망한 20대 남성 A씨는 한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오른 무더위에 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며 가슴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대형마트 내에서 산업재해 빈도가 가장 잦고, 중대 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은 물류센터와 지하 주차장"이라며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하고 적당한 인력 배치, 안전 수칙을 강화 등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발생 비율이 높진 않지만, 대형마트 내 사망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만큼 중처법이 업계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현재까지 50인 이상 규모의 대형마트에서 중처법이 적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동종 업계에 경각심을 주려는 의의가 크다"며 "유통 업계가 다른 업계에 비해 사망 사고 발생 위험성이 낮아 상대적으로 근로자 안전 관리에 소홀할 수 있는 만큼 업계에 경고를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실효성 제고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