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 장기계약 체결을 강제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에 191억원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당시 브로드컴 부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삼성전자의 상황을 활용해 자사에만 유리한 계약을 체결시킨 행위를 ‘거래상 지위 남용’으로 판단했다.
21일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경쟁사업자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부품 선적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으로 장기계약 체결을 강제한 브로드컴(브로드컴 인코포레이티드(미국 본사), 브로드컴 코퍼레이션(미국), 아바고 테크놀로지스 인터내셔널 세일즈 프라이빗 리미티드(싱가포르), 아바고테크놀로지스코리아 주식회사(한국지사) 등 통칭)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스마트기기에 사용되는 최첨단, 고성능 무선통신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진 반도체 사업자다.
공정위에 따르면 당시 삼성전자는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기기에 탑재되는 최첨단, 고성능 부품의 대부분을 브로드컴에 의존한 상황이었다. 브로드컴은 2018년부터 일부 부품에서 경쟁이 시작되자 브로드컴은 2019년 12월 삼성전자가 경쟁사업자로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장기간 매출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브로드컴은 독점적 부품 공급상황을 이용한 장기계약(LTA, Long Term Agreement) 체결 전략을 수립했다.
브로드컴은 LTA 협상을 앞두고 삼성전자에 거래를 중단할 예정임을 전달하고, LTA 첫 번째 협상에서 장래 삼성의 스마트기기 관련 부품들의 공급을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협상 개시 이후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의 구매 주문도 받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구매주문승인 중단이 지속돼 부담이 되자, 일부 부품에 대한 LTA 체결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브로드컴은 또다른 부품까지 포함시킬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모든 부품 선적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브로드컴이 원하는 대로 LTA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LTA의 핵심 내용은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브로드컴의 부품을 최소 7억6000만달러 구매하고, 실제 구매금액이 7억6000만달러에 미달하는 경우 차액을 배상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이 같은 브로드컴의 행위에 대해 심사관측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과 거래상 지위 남용 조항 적용을 살펴봤으나, 피해 기업이 삼성전자에 국한돼 거래상 지위 남용 조항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는 당시 브로드컴의 선적 중단 등 조치로 인해 협상에서 매우 불리했고, 브로드컴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에 의해 강제된 LTA를 이행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당초에 채택했던 브로드컴의 경쟁사 제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전환해야 했다. 2021년 출시한 갤럭시S21에 경쟁사업자의 부품을 탑재하기로 했지만 결국 이를 파기하고 브로드컴의 것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등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을 지속할 수 없었다. 또 브로드컴 부품은 경쟁사보다 비싸 단가 인상으로 인한 금전적 불이익도 발생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브로드컴의 행위가 거래상대방에 대한 우월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 위원장은 “브로드컴의 경쟁사업자들은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를 빼앗겼고, 장기적으로는 부품제조사의 투자 유인이 없어져 혁신이 저해돼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 될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브로드컴 같은 반도체 분야 선도기업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고, 관련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억제해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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