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한라산, 해녀, 오름이 전부?…우린 제주를 모른다

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제주의 2000년 역사, 문화, 자연을 속속들이 담아냈다. 한라산, 오름, 감귤, 해녀, 화산섬 등 제주의 단편적 면모만 아는 이들에게 깊숙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제주의 탐라국은 신라보다 170년이나 더 독립국으로 살아남은 나라였고, 제주는 무려 100여년간 실질적으로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운동이자 항일운동으로 제주 해녀항쟁이 있었다는 사실, 제주의 수월봉이 ‘세계 화산학의 교과서’로 불린다는 사실 등을 소개한다. 책은 제주 토착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몽골의 침입에 대항했던 '삼별초의 항쟁'으로 유명한 삼별초도 제주 입장에서는 수탈민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제주 입장에서는 고려 정부도, 제주 토호 세력도, 몽골에 맞서는 삼별초도 모두 제주도민들을 수탈하는 권력자였다는 것. 조선 시대 역시 무리한 진상 요구로 고통을 겪었다고 설명한다. 역사뿐 아니라 시기별 맞춤형 여행정보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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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처럼 제주는 알면 알수록 그 가치가 더 크게 보이고 더 아름다운 섬이다. 한반도 본토와 다른 역사, 문화, 자연을 가졌고 심지어 제주의 동서남북도 다른 역사, 문화, 자연을 가졌다. 그런 차이가 제주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제주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과 제주 사람이 아니었을 때 보이는 것들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 것은 반서반제인(반은 서울, 반은 제주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행운이었다.” - 「시작하며」 중에서


제주에서 결혼식은 이름부터가 잔치이다. 잔치는 3일간 치러진다. 첫째 날은 이름 자체가 ‘돼지 잡는 날’이란 뜻으로 ‘도새기 잡는 날’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돼지를 잡으면서 모든 의식이 시작된다. 잡은 돼지는 버릴 것이 하나 없다. 생간은 돼지 잡는 일을 도운 사람들이 즉석에서 왕소금에 찍어 먹는 별미다. 피와 내장은 수에(순대)가 된다. 수에는 돼지의 피에 메밀가루, 부추, 소금을 혼합해 창자에 넣고 삶아 낸 음식이다. 족발은 제주에선 아강발이라고 하는데, 산모의 젖을 잘 나오게 한다고 해산한 집에서 가져가고, 꼬리는 침을 흘리는 손주를 위해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챙겨 간다. 돼지머리는 혼례식 당일 아침에 문전제를 지낼 때 올린다. (중략)

둘째 날은 잡은 돼지를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기 때문에 ‘먹는 날’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경조사가 생기면 ‘먹을 일’이 생겼다고 하고 결혼식에 가는 일은 잔치 먹으러 간다고 말한다. 즉 잔치란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다. 이날은 친척들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이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논다. 원래 둘째 날의 정식 명칭은 가문잔치로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다음 날(셋째 날) 있을 혼례를 준비하고 대접받는 날이었다. 가문잔치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대접했다. 인구가 많지 않은 마라도에서는 만일 미역 철에 경조사가 생기면 미역을 포기하고서라도 도우러 갔다고 한다. 미역을 딸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도 채 안 되고 미역을 따지 못한다면 가정 경제에 큰 타격이 오겠지만 그보다 공동체가 더 우선이었다. 가문잔치는 차츰 친척뿐 아니라 동네 사람이나 지인들이 모여서 대접받는 날로 바뀌었다. 어차피 제주는 ‘궨당 사회’로 마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궨당(친척)들이니 잔치에 가서 일도 하고 대접도 받는 것이다. 가문잔치란 말도 3일 잔치를 통틀어 일컫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제주 사람들은 이 특별한 날에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한 점의 낭비도 없이, 고르게 분배하는 일을 하기 위해 특별한 전문가인 ‘도감’을 초빙한다. 도감은 칼을 쓰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경조사를 치를 집에서 정중히 모셔 온다. 도감은 손님 수와 돼지고기의 양을 가늠해서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분배하는 일을 한다. 만일에 고기가 모자라면 그 잔치는 망한 잔치가 된다. 그러므로 잔치의 성패가 도감 칼솜씨에 달렸다고 할 만큼 도감은 제주에만 있는 스페셜리스트이다. - 「3월. 문화 - 제주의 결혼식은 가문잔치」 중에서

조선 시대에 제주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형벌에 가까웠다. 제주는 섬이라 직접세인 토지세가 없는 대신에 진상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물은 국가 재정이라 흉년이나 천재지변에는 나라에서 깎아 주기도 했고 대동법이 실시된 이후에는 돈이나 쌀, 옷감으로 납부하면 되었다. 하지만 진상품은 왕실 재정이라 흉년이든 아니든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제주는 마치 왕실 전용 점령지와 같았고 진상이 진상을 떠는 곳이 되었다. 제주 사람들이 왕실에 진상해야 할 품목은 귤, 해산물, 약재, 말, 흑우, 육포처럼 대부분 제주 특산물들이어서 대체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1인당 10역이나 감당해야 했다.

이렇게 가혹한 의무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 제주 인구는 세종 때의 절반까지 줄었다. 제주는 조선 정부에겐 매우 중요한 국토방위의 요충지인 데다 진상품의 보고였다. 결국 비변사는 제주에 출륙 금지령을 내려 달라고 제안했고, 인조 임금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제주 사람들은 1629년부터 200년간 허가 없이는 육지를 가지 못했고 육지 사람도 제주에 오지 못했다. 아름다운 제주섬은 바다 위의 푸른 감옥이 되었다. - 「5월. 역사 - 푸른 감옥, 출륙 금지령」 중에서


바위 위에 숲이 만들어졌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우선 바위 위 숲이란 말부터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럼 이건 어떤가? 낙엽을 밟고 싶다면 가을이 아닌 봄에 가야 하는 지역이 있다. 봄에 싹을 틔워 여름부터 겨울까지 열매를 맺는 식물의 시간을 뒤집고 겨울에 싹을 틔우고 봄에 순환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혹시 외계 행성 이야기가 아니냐고? 물론 아니다. 모든 상식이 뒤집힌 이 신비한 기적의 숲이 바로 곶자왈이다. (중략)

제주어 사전에 따르면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과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곶자왈은 원래 있던 지형 이름이 아니다. 제주에는 곶과 자왈이라는 두 개의 다른 지형이 있었다. 곶은 숲이고 자왈은 가시덤불 지역이다. 곶과 자왈을 합쳐서 곶자왈이란 이름을 만든 것은 송시태 박사이다. 송시태 박사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고,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이곳에 학술적인 이름을 붙임으로써 인류가 탐구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송시태 박사가 곶자왈에 주목한 이유는 물 때문이었다. 곶자왈은 제주 지하수의 절반가량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엉기성기 쌓인 용암들 사이로 빗물 등이 내려가면서 깨끗하고 맑은 지하수가 만들어진다. 곶자왈은 흙이 극히 없고 오로지 바위와 돌이 아무렇게나 얽혀 있어서 농업이나 임업 같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곳이다. 집 하나 지을 평평한 지대가 없으니 버려졌다. 그 덕에 비료나 농약도 뿌릴 일이 없고 분뇨나 폐수가 나오지도 않는다. 가장 깨끗한 지하수를 만들어 제주 사람들을 살리는 곳이 곶자왈이다. - 「6월. 자연 - 상식을 뒤집는 숲, 제주 곶자왈」 중에서


오름 중의 최고는 따로 있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위에 있었다는 전설을 가진 오름인 산방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제주섬을 다 만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이 너무 뾰족하다고 산의 윗부분을 뽑아 던졌다고 한다. 뽑혀 날아가 만들어진 오름이 바로 산방산이다. 신기하게도 갖다 붙이면 똑떨어질 정도로 크기가 비슷한 데다 백록담에서 마지막에 분출한 용암과 같은 조면암으로 이뤄졌다. 모양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하고 심지어 돌도 같은 조면암이라니.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전설이 생긴 것이리라.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실제로는 백록담보다 훨씬 전에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오름 중 하나이다. 나이가 무려 80만 살이나 된다. - 「8월. 자연 ? 오름 위의 공기는 맛있다」 중에서

신비 섬 제주 유산 | 고진숙 지음 | 블랙피쉬 | 528쪽 | 2만7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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