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 드라마 팬에게 한국 배우를 사칭해 피싱 범죄를 시도한 사례가 등장했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의 '오피니언'에 실린 글에 따르면 사회인류학자인 프리실라 래천 린(78)은 넷플릭스 드라마 '나빌레라'를 시작으로 'K-드라마'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나빌레라'는 일흔에 평생의 꿈인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할아버지와 스물세살 발레리노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방영 당시 한국에서도 잔잔한 감동으로 입소문을 탄 드라마다.
린은 "젊은 발레리노를 연기한 송강이 등장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며 이후 점차 접하는 한국 드라마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배우들의 SNS를 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수히 많은 '찬양 댓글' 끝에 놀랍게도 '최애'(가장 사랑하는 사람) 배우들이 나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며 "이 대단한 남자들이 사려 깊고 재미있는 나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당신은 내 지능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실제 배우 본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사춘기 시절의 주목받고 싶은 욕망 혹은 로맨스 중독이 나를 붙들었다. 앱을 다운받아 스타들과 채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린은 "내가 배우 안효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에게 신용카드 정보를 요구하기까지 달콤한 대화가 이어졌다"며 "정신이 번쩍 들었고, 채팅을 그만두었으며 지금은 개인 메시지를 모두 무시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한류스타에 대한 팬심을 악용한 피싱(phishing·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보낸 메시지인 것처럼 가장해 신용카드 정보와 같이 기밀을 필요로 하는 정보를 부정하게 얻는 사기 수법) 범죄의 피해자가 될 뻔한 사건이었다.
린은 "분노가 사그라든 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봤다"며 "관심을 즐기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며, 유명 인사의 후광 한 조각이 나에게 떨어지는 순간 우리 역시 갑자기 자신을 중요한 인사로 여기게 된다"라고 짚었다.
그는 "드라마 배우들에 대한 몰입은 인생의 마지막 장으로 접어든 나를 비롯해 내 또래 많은 이들이 느끼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하는 도피처였다"며 "드라마를 즐기는 일과 배역에 대한 집착은 이제 구분하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린은 "당신은 '배운 게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K-드라마 중독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물을지도 모른다"라면서 "할머니가 로맨스를 즐기도록 좀 내버려 두라. 물론 나는 여전히 TV 앞에 딱 붙어산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편 실제로 유명인들의 계정을 사칭해 팬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등 피싱 범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을 사칭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받은 '저 아이브 장원영인데, 지금 휴대폰 액정이 깨져 문자나라로 보내고 있다. 제가 지금 급해서 그런데 편의점에서 구글 기프트 카드(구글 플레이 스토어 내 포인트) 만원짜리 10장만 사서 보내줄 수 있느냐'는 문자를 공개한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브라질에 사는 한국 드라마 팬인 한 여성에게 자신이 배우 박보검이라고 사칭하여 "당신을 만나러 가고 싶은데 소속된 연예기획사 경비를 사용하려면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하니 항공료 등을 먼저 보내주면 만나서 정산해주겠다"며 5만 헤알(약 1300만원)을 송금한 사실도 발생했다. 당시 비슷한 사례 피해 신고가 6~7건 추가로 들어왔으나 다른 피해자들은 돈을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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