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을 두고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기싸움이 팽팽하다. 우리나라는 폐배터리를 폐기물로 규정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 총괄 부처인 산업부는 “산업 활성화를 위해 폐배터리 회수, 유통, 활용을 민간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폐기물 관리 부처인 환경부는 “폐배터리는 인화·폭발성을 지닌 유해 폐기물이기 때문에 규제 안에서 추적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와 현대자동차, 포스코퓨처엠 등 배터리 관련 업계와 무역보험공사, 광해공업공단 등 공공기관으로 구성된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다음달 최종 회의를 거쳐 폐배터리 재활용 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제3차 산업전략 원탁회의’에서 민간 중심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만들고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통해 폐배터리 통합관리체계와 지원방안에 대한 업계 안을 마련해 법제화를 검토하기로 했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으로 2021년 1월1일 이후 등록한 전기차에 대해 폐배터리 지자체 반납 의무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쏟아질 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산업부는 작년 9월 관계부처 합동 순환경제 활성화 대책 마련 과정에서도 민간이 폐배터리 회수, 유통, 활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다.
산업부는 폐배터리에 대한 통합관리체계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폐배터리는 전기차 탑재 시점부터 해체되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다부처 복합규제를 받고 있다. 자동차관리법, 대기환경보전법,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법만 6개 정도다. 쓰는 용어도 다르다.
환경부에서는 폐배터리라고 정의하지만 산업부는 사용후 배터리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계에서 폐배터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그만큼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반면 환경부는 폐배터리가 위험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 안전을 위해 재활용 시 ‘지정폐기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폐배터리 팩은 ‘일반폐기물’,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랩(불량품)은 지정폐기물로 나눠 관리한다. 폐배터리 재활용 업계에선 “일반과 지정을 구분해 인허가를 취득하고 관리해야 한다”며 “폐배터리 팩이든 불량품이든 재활용 시 동일한 공정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법상 분리돼 있어 투자비가 더 들고 혼선이 발생한다”고 토로한다.
환경부는 “공정에서 나오는 불완전한 불량품들은 폐산 같은 유독물질을 포함한 전해액을 주입한 경우, 양극재만 있는 경우 등 상태가 들쭉날쭉해 지정폐기물로 분류했다”고 설명한다. 지정폐기물로 지정되면 밀폐·보관사항에 대해 안전규제를 받고,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받는다. 환경부는 완전한 상태의 폐배터리 팩 자체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폐배터리 활용은 크게 재제조, 재사용, 재활용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재제조는 상태가 좋은 폐배터리들에서 배터리셀을 분리해 새로 조립한 후 전기차에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재사용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를 말한다. 재활용은 폐배터리를 파쇄 또는 고온의 열을 가해 녹인 뒤 원료 금속을 추출하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제조, 재사용은 배터리셀 자체를 파쇄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된다”며 “재활용은 셀 안에 있는 전해액 등에 유독물이 포함돼 있어 유해물질 누출과 화재 폭발 위험이 크다”고 했다. 환경부는 이런 이유로 곧 시행될 자원순환법 개정을 통해 폐배터리를 재사용할 때는 폐기물 규제를 면제했지만, 재활용 시에는 여전히 폐기물로 규제하고 있다.
그는 “폐배터리를 폐기물관리법이 아닌 특별법 하에서 관리하면 추적관리를 할 수 없어 안전과 환경적 측면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또 폐기물에서 재활용해서 나오는 원료가 재생원료인데 ‘폐기물’에서 폐배터리를 제외하고 ‘제품’으로 분류하면, 재활용하더라도 재생원료로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폐배터리를 갈아 만든 검은색 가루(블랙파우더)를 폐기물로 볼지, 제품으로 볼지에 대해선 검토 중이다. 이 관계자는 “재활용과 관련한 업계 애로사항 중에서 불합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간담회를 통해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폐배터리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업계 반대가 워낙 심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폐배터리가 EPR 대상에 포함되면 생산자인 배터리 3사가 책임지고 회수해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해야 한다. 이행하지 못할 경우 재활용 비용 이상의 금액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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