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구글과 글로벌 검색 엔진 1위 자리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반독점 행위를 저질렀는지 미 정부와 법적으로 다투는 반독점 소송 재판이 12일(현지시간) 시작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제기한 이 소송으로 3년만에 재판이 열린다.
1998년 설립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급성장, 검색 시장 점유율 90%를 달성한 구글이 아이폰 등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탑재하는 과정에서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활용했는가 하는 것이 이번 소송의 핵심이다. 20여년 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유사한 소송을 진행, 기업 분할 결정까지 나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만큼 구글은 물론 관련 업계가 이번 재판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구글의 운명을 결정할 뿐 아니라 향후 수십년간 기술 산업의 경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양쪽 모두 항소할 것으로 전망돼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 시작 전 구글과 미 정부의 소송과 관련해 들여다볼 지점을 세 가지로 나눠 정리했다.
이번 재판은 구글이 검색 엔진을 스마트폰 등 기기에 선탑재하기 위해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 AT&T 등 통신업체와 맺은 계약이 반독점법 위반 사항인지를 다툰다. 구글은 이들 업체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선탑재하는 비용으로 매해 수십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이 과정에서 구글이 검색 엔진 유통망을 불법으로 장악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광고 수입으로 경쟁업체 진출을 막았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덕덕고 등 다른 검색 엔진이 시장에서 진입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고 소비자의 선택에도 구글이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다.
반면 구글은 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이들 업체가 직접 선택, 소비자에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계약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켄트 워커 구글 글로벌 업무 담당 사장은 미국 내 제품 검색의 60%가 아마존에서 시작되는 만큼 소비자가 구글 외에도 온라인 검색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애플 등과의 선탑재 계약이 구글의 지배력을 강화, 유지하려는 목적 외에 사업적 판단으로 이뤄진 계약인지를 다툴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의장 출신의 빌 코바시치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판사가 아마 구글이 상당한 독점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경향이 있다고 본다"며 "따라서 모든 관심은 그 행위(계약)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탑재하는 휴대폰 제조업체와 특정 구글 애플리케이션(앱)을 선탑재하도록 요구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 또 다른 쟁점으로 재판에서 논의된다.
이번 재판에서 선탑재 계약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구글과 애플의 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글의 검색 엔진이 애플의 대표 제품인 아이폰에 선탑재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구글의 선탑재 관련 비용이 애플에 가장 많이 나가고 있어 두 기업의 계약이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되리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되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구글이 애플에 연간 200억달러(약 26조6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과 구글의 상호작용은 곧 현대 실리콘밸리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법 중 하나"라면서 "수십년간 두 기업은 치열한 경쟁과 열정적인 협력을 병행해왔다"고 평가했다.
두 회사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됐다. 에디 큐 애플 수석 부사장은 애플과 구글이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 MS의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애플이 사파리 브라우저를 출시하면서 URL 입력 없이 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 첫 계약 당시만 해도 사파리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했지만, 아이폰이 대박 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놓고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하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큰 배신감을 느끼고 '핵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로 인해 애플 이사회 멤버로 잡스 창업자와 절친했던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애플 이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 일로 잠시 끊어진 듯 보였던 두 회사의 인연은 이후 다시 이어졌다. 2016년 애플은 시리와 맥북의 기본 검색 엔진을 MS 빙에서 구글로 변경했다. 2018년 팀 쿡 애플 CEO와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가 만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 해 한 회의 석상에서 애플의 고위 임원은 구글 카운터파트에 "우리가 한 회사처럼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며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레베카 호 알렌스워스 밴더빌트대 로스쿨 교수는 구글이 애플에 지불한 금액이 충분히 낼 만한 금액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폰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탑재,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면 그만큼 광고주가 늘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돼 사업적으로 그만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이러한 금액이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전문가를 데려올 것으로 예상했다.
구글과 미 정부의 이번 재판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8년 있었던 MS를 상대로 한 반독점 재판과 같은 논리로 진행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MS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윈도우즈를 탑재한 컴퓨터에 기본으로 설치해 판매했다가 소송이 진행됐다. 이때 1심에서 미 법무부가 승리, 기업 분할이라는 엄청난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MS가 항소해 대부분은 1심 판결이 유지됐으나 기업 분할 명령은 다시 법적으로 다투게 됐다. 이후 법무부는 분할을 포기했고 MS와 합의안을 도출했다.
미 법무부는 구글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당시 사례를 언급, "구글도 같은 플레이북을 사용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소송이 25년 전 MS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 이뤄졌지만, '문화적인 영향(cultural impact)'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며 "1990년대 후반 MS는 유일한 빅테크 기업이었고 게이츠는 국가적 아이콘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마존, 애플, 메타플랫폼 등 다양한 빅테크가 존재하는 지금 구글은 당시의 MS만큼 위상이 높지 않다는 것이 NYT의 설명이다. 또 MS의 반독점 재판은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부호였던 게이츠의 영향력에 대한 압박이었는데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그만큼 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NYT는 봤다.
구글도 당시 MS 사례와 현 소송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워커 사장은 199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의 90%가 MS의 윈도우즈를 사용했고 이 소프트웨어로 PC 화면에 나오는 다른 서비스도 제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글은 스마트폰, 브라우저 등을 만드는 파트너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이와 관련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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