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의 ‘메이트60프로’에 탑재된 중국산 칩은,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킨 중국의 분명한 승리를 의미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지난달 29일 선보인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는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를 외부에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상위급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유난히 강도 높은 압박을 받았던 대표적 기업 화웨이가 반격과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가에 중국 현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미국 제재가 촉매제로 작용해 중국의 기술자립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타이밍을 놓칠세라 특유의 공세적 투자에 불을 붙이며 정부와 민간기업 주도로 천문학적인 자본을 반도체 기술 개발에 쏟아부을 태세다.
화웨이의 새로운 스마트폰이 시장에 출시되자 미국 주요 언론과 전문지들은 앞다퉈 제품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메이트60프로’를 해체해 살펴본 매체들은 중신궈지(SMIC)가 개발한 7㎚(10억분의 1m) 기술의 반도체 칩(기린 9000)이 쓰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삼성전자나 대만 TSMC와 비교해 5년 이상 뒤처진 기술이지만 제재 우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번 출시는 미국의 대중 제재 전략까지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성과의 이면에는 중국 특유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가 자리하고 있다. 화웨이는 사업 여건이 바닥을 치던 지난해에도 연구개발(R&D)에 1615억위안(약 29조4641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는 매출(6423억위안)의 25%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 영향으로 순이익은 전년 대비 70% 급감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화웨이는 R&D 비용으로 826억위안을 썼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화웨이의 R&D 투자액은 총 9773억위안에 달한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중국은 자본 공세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부문을 위한 3000억위안 규모의 국가지원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른바 ‘빅펀드’다. 이 펀드는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은 상태이며 중국 재무부가 기금의 20% 수준인 600억위안을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14년(1389억위안)과 2019년(2041억위안)에도 국영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산업 생태계에 사실상 직접 개입했다. 당시에는 중국개발은행, 중국담배공사, 차이나텔레콤 등 자금력이 충분한 국영기업들도 대거 동원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국은 2000년부터 반도체 산업 발전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발표해 독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조 기업에 대한 세수 혜택을 제공하며 R&D 투자를 본격화했다. 2021년에는 ‘제14차 5개년 규획’을 통해 반도체를 국가 안보 및 발전 핵심 영역으로 규정하고 병목지점으로 꼽히는 EDA, 소재, 첨단 메모리 등과 차세대 반도체 발전을 강조하며 보다 세부적 전략을 마련해오고 있다.
큰 틀에서 살펴보면 2018년 상하이에 커촹반을 개설한 것 역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혁신기업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한다. 실제로 미·중 경쟁이 본격화된 2019~2021년 상장된 51개 반도체 기업 가운데 43개 기업이 커촹반을 거쳐 대규모 자금조달을 추진했다. 지난 5월에는 상하이 메인보드에 상장돼있던 넥스칩과 SMIC가 커촹반 이중상장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았고, 화홍반도체도 지난 7월 이중상장했다.
하지만 화웨이의 신제품 출시로 중국이 축포를 터트릴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번에 쓰인 7㎚ 칩은 애플이 아이폰에 이미 2018년부터 탑재했었다. 현재의 아이폰은 4㎚ 공정 칩으로 구동되며, 오는 12일 출시될 아이폰15은 3㎚ 공정 칩이 탑재될 예정이다. 경쟁사는 벌써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는 셈이다.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도 승리를 자축하긴 이르다. 궈밍츠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메이트60프로가 1200만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나왔던 메이트50프로(250만대)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숫자다. 그러나 출시를 앞둔 아이폰15 판매 추정치(9000만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뒤처져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메이트60프로 출시에 대해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진화적"이라면서 "베이징의 축포와 워싱턴의 절망은 모두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컨설팅 업체 세미어낼리시스의 딜런 파텔 반도체 연구 부문 책임자는 "획기적인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SCMP 역시 "화웨이가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 잃어버린 입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전자에 도전했던 2020년 이전의 전성기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양적 공세가 반드시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는 과거 선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국산화와 관련한 중국 지방정부 프로젝트 중 일부는 기금운용사의 부패와 기술 이해도가 부족한 공무원들의 부실한 투자 등으로 대거 실패한 바 있다. 2017년 11월 중국 우한홍신반도체제조(HSMC)가 계획했던 1280억위안 규모의 반도체 팹 건설 프로젝트가 허위로 밝혀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손실은 그대로 지방정부가 뒤집어썼고 반도체 산업기금 운용관리사인 화신투자의 임원이 조사받는 상황까지 갔다.
화웨이의 기술 반격을 겪은 미국이 추가 제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디슨 리 제프리스 홍콩 주식 분석가는 SCMP에 "화웨이는 4분기에 미국 정부로부터 더욱 엄격한 반도체 기술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댄 허치슨 테크인사이츠 부회장은 주요 외신을 통해 "이번 (화웨이의) 성과는 중국 반도체 기술력의 회복력을 보여준다"면서도 "동시에 중요 제조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으려 노력해 온 국가에는 큰 지정학적 도전이며 그 결과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제재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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