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최근 흑해곡물협정 중단과 엘니뇨, 태풍 등 이상기후 영향으로 국제곡물가격 불안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식료품 발 물가 상방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은 28일 '국내외 식료품 물가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 보고서를 통해 "최근 우리나라에서 집중호우, 폭염, 태풍 등 기상여건 악화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다 기상이변, 흑해곡물협정 중단,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제한 등이 겹치면서 식료품 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 식료품 물가는 조금씩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가격상승도 소비자물가를 크게 상회하는 중이다. 지난달 국내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0.3% 오르면서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는데, 여기엔 농산물(10.6%) 가격이 치솟은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최근 국내외 식료품 물가의 높은 상승세는 글로벌 요인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이후 공급병목 현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곡물·비료공급 차질, 각국의 식량 수출제한, 이상기후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실제 한은이 50개국의 데이터를 이용해 식료품 물가 상승 요인을 분석해보니, 글로벌 공통요인이 국가별 고유요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아 국제식량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21년 기준 20.9%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제식량가격은 국내 가공식품 가격과 외식물가에 시차를 두고 파급되는데, 가공식품은 11개월 후에, 외식물가는 8개월 후에 최대로 나타났다.
한은은 앞으로 국내외 식료품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가 더디게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흑해곡물협정 중단, 인도 쌀 수출 중단 등에 따른 식량안보 우려 등이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도 엘니뇨, 이상기후 등이 국제 식량 가격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올해 강한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 곡물 주산지의 기상이변과 농산물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엘니뇨 기간 이후에는 국제식량가격 상승기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1℃ 상승할 때 평균적으로 1~2년의 시차를 두고 국제식량가격이 5~7%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엘니뇨는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예년 평균 대비 0.5℃ 이상 높은 상태가 수개월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지난 5월부터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0.5℃를 초과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1.5℃ 이상 높아지는 강한 엘니뇨가 발생해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 영국, 유로존 등 주요국에서도 지난해 이후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서 식료품 발 물가 불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은 "가공식품 등 식료품과 외식 물가의 경우 하방경직성과 지속성이 높고 체감물가와의 연관성도 높아 기대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물가의 둔화 흐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계지출 중 식료품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부담이 증대되고 실질구매력이 축소될 수 있다"며 "향후 식료품 물가의 흐름과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