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사건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아들을 배신한 친아버지의 이야기다. 2018년 2월18일 새벽 5시쯤 A씨(당시 25세)는 길가에서 시비가 붙은 B씨에게 맞고 쓰러졌다. B씨는 A씨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얼굴을 여러 차례 밟았고, A씨는 곳곳이 골절돼 6주간 병원 신세를 졌다. 치료비만 수천만원이 들었다. B씨는 상해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은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던 폭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한 B씨 측은 A씨와 합의를 시도했다.
그런데 A씨의 친아버지가 개입했다. 10여년 간 연락이 없던 그는 2018년 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아들에게 접근했다. 친부는 B씨 측과 직접 만나 합의금 2000만원을 받았다. A씨 입장에선 전혀 합의할 생각이 없는 액수였다. 친부는 B씨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A씨 명의로 작성한 뒤 B씨의 재판에 나가 "아들이 합의금 중 1200만원을 받아 갔다"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 부당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친부를 경찰에 고소한 뒤 원망하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친부에게 보냈다. 결국 항소심도 "친부가 A씨의 합의 권한을 넘겨받은 것인지 의심된다"며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부자 관계는 급속도로 틀어졌다. 검찰은 사기와 사문서위조, 위증 등 혐의로 친부를 재판에 넘겼다. 친부도 아들을 무고죄로 맞고소했지만, A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친부는 자신의 재판 과정에서 "자녀는 사문서위조죄 등으로 부모를 고소할 수 없다.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라며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제224조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서 아들을 대신해 합의할 권한이 있다. 원만히 해결될 부자지간 문제를 검사가 개인적 편견으로 수사하고 기소한 것"이라며 "B씨 측에 합의금도 돌려줘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아버지가 '친구에게서 받은 중고차를 줄 테니 인감증명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며 자신의 인감증명서가 B씨 측과 합의하는 과정에 악용됐다고 호소했다.
친부는 다시 징역을 살게 됐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친부의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재판장 허경무)는 최근 친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들의 고소는 수사의 단서에 불과했다. 피해자는 고소와 신고, 제보 등 형태로 수사권 발동을 촉구할 수 있다"며 "B씨의 항소심을 지켜본 검사로서도 친부의 혐의를 인지할 수 있었다. B씨 측이 친부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친족 관계가 아니란 점에서 검사의 기소는 유효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비슷한 범죄로 징역형을 살고 나온 지 6개월여 만에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 반성은커녕 명의가 도용된 아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오히려 아들을 고소했다"며 "연락도 없이 지내던 아들이 법률에 무지한 점을 이용해 도와주는 척하면서 이익을 취하려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해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친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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