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 리미티드(ltd)가 올해 중 미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입니다. 이 가운데 모기업 소프트뱅크는 여러 미국 빅 테크들을 '앵커 투자자(Anchor investor)'로 모집 중입니다. 후보 명단 중에는 오랜 기간 ARM과 협력해 온 애플, 삼성전자도 있지만, 엔비디아·인텔 등 경쟁 기업은 물론 유통 기업 아마존도 포함돼 있습니다.
앵커 투자자, 혹은 초석 투자자는 사기업의 기업 공개 과정에서 지분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상장 흥행 및 성공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벤처캐피탈(VC) 시장 위축으로 직격타를 맞은 소프트뱅크는 ARM 상장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대한 많은 대기업을 앵커 투자자로 모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상장으로 시가총액 700억달러, 100억달러 이상의 투자금 유치를 목표로 합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금융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소프트뱅크와 협상 중인 앵커 투자 기업 목록은 거의 열 군데에 달합니다. 그중에는 삼성, 애플 등 ARM과 이미 협력 관계를 맺은 기업도 있으나 아마존, 구글 같은 인터넷 기업도 있습니다. 반도체 회사인 ARM과는 아주 큰 관련은 없어 보이지요.
매체들에 따르면 ARM의 앵커 투자자들은 이사회 멤버 추천이나 의결권 추가 확보 등 ARM의 경영상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ARM의 산업 생태계가 방대해졌음을 뜻합니다.
과거 ARM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에 특히 뛰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간단한 구조를 지닌 마이크로컨트롤러, 전력 효율성과 발열 관리가 성능보다 우선되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애플, 삼성, 미디어텍 등이 ARM과 협력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최근 ARM 생태계는 단순히 스마트폰 시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가 내년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차세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GC200의 핵심은 사실 GPU가 아닙니다. ARM이 개발한 최신예 서버용 CPU '네오버스 V2' 코어 144개를 탑재한 '그레이스 슈퍼칩'의 성능에 기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글로벌 클라우드 산업의 양대 산맥인 아마존은 자사 데이터센터용 칩으로 ARM CPU를 사용합니다. '그래비톤'이라 불리는 프로세서로, ARM 서버 시장을 확대한 1등 공신입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버용 칩 시장은 인텔과 AMD가 양분했습니다. 서버는 휴대폰과 달리 저전력보다 성능이 더 우선시되는 분야이며, 인텔과 AMD는 초고성능의 '슈퍼칩'을 제작하는데 이골이 난 기업들입니다. 그러나 아마존을 비롯한 기업들이 ARM 기술을 사용하면서 최근 이 시장에선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IDC 자료에 따르면 ARM 서버칩의 시장 점유율은 이제 10%로 2년 전(5%) 대비 2배 성장했습니다. 특히 미국산 고급 컴퓨터 칩을 수급하기 어려운 중국에서는 ARM 서버칩이 거의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또한 아마존은 이런 ARM 서버칩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서버 시장에선 ARM의 최대 경쟁자인 인텔마저도 실은 ARM과의 협력을 더 두텁게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인텔과 ARM은 지난 4월 전략적 협업을 선언했습니다.
인텔의 위탁생산 전문 사업부인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에 ARM의 설계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18A(1.8㎚) 공정에서 저전력 시스템온칩(SoC)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 IFS는 스마트폰용 SoC를 시작으로 향후 자동차 반도체, 사물인터넷(IoT), 인공위성 반도체는 물론 데이터센터까지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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