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글로벌 생산 기지인 베트남의 대표 전기차 제조업체 빈패스트 오토(Vinfast Auto)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증시에 데뷔하면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뉴욕증시에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이 BMW,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글로벌 대형자동차 회사들을 넘어서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빈패스트는 이날 나스닥에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한 우회 상장을 했다. SPAC 회사인 블랙스페이드애퀴지션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상장이다. 상장 첫날인 이날 빈패스트의 주가는 22달러(약 2만9500원)에 시작해 하루 만에 68% 상승, 37.06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등락 폭이 커 일시적으로 거래가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우회 상장 통로가 된 블랙스페이드에퀴지션은 애초 이 회사 가치를 230억달러(약 31조원·주당 10달러)로 평가했다. 시초가부터 평가 가치의 2배 이상을 인정받은 셈이다.
빈패스트의 시총은 85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BMW(684억달러)와 포드(480억달러), GM(458억달러), 리비안(197억달러)을 넘어서는 수치다. 블룸버그는 포드와 리비안의 시총을 합산한 것보다도 빈패스트의 시총이 더 많다고 전했다. 빈패스트는 중국 전기차 선두업체인 비야디(939억달러)의 가치에도 근접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첫 베트남 자동차 제조업체인 빈패스트는 베트남 최대 기업 빈그룹의 자회사다. 2017년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이 자동차 산업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세운 회사로, 전기차 제작에 앞서 오토바이와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만들었고 현재는 전기차를 직접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베트남 기업인 빈패스트가 나스닥에 상장한 것은 핵심 타깃으로 삼은 미국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현지 투자를 위한 자본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빈패스트는 사업 초기부터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설정한 바 있다. 르 티 투 투이 빈그룹 부회장 겸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가 집중할 첫 글로벌 시장 중 하나"라면서 "미국을 위한 하이엔드 모델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미국에 2100대, 캐나다에 800대 수출했다고 CNBC는 전했다.
빈패스트는 지난달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자동차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회사는 이 공장에서 2025년부터 전기차를 양산해 연간 15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여기에만 브엉 회장 일가가 최소 3억달러를 투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시행,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격 경쟁력 등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진행된 빈패스트 공장 착공식에서 르 티 투 투이 빈그룹 부회장 겸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왼쪽)와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삽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투이 CEO는 외신에 "미국 상장은 우리에게는 큰 이정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고 훌륭한 애프터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항상 다른 비슷한 제품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왔지만, 제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더 좋은 기능과 기술이 탑재돼 있다"며 "소비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인식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빈패스트가 나스닥에서 화려하게 출발했음에도 곧바로 전기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 이미 과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세계 시장 경험이 아직 부족한 빈패스트가 이를 뚫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CNBC는 "지난 3월 빈패스트가 처음 미국으로 차량을 인도했지만, 아직 테슬라나 다른 디트로이트 자동차 업체 등과 경쟁하려면 멀었다"고 평가했다. 빈패스트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 줄었고, 5억9800만달러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지난해 연간 손실은 21억달러에 달한다.
또 빈패스트가 이날 상장해 시총이 글로벌 기업을 뛰어넘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주식 수는 적은 편이어서 주가나 시총 유동성이 클 것이라고 외신들은 예상했다. 현재 빈패스트의 지분 99%는 사실상 브엉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빈패스트는 이날 전략적 투자자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다며 필요시 추가 자금 조달을 할 계획도 있다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빈패스트가 상장하면서 베트남 최고 부호인 브엉 회장의 순자산도 이날 하루에만 52조원 이상 급증했다. 브엉 회장의 순자산은 빈패스트의 상장으로 390억달러가 추가돼 443억달러로 집계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1968년생인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우크라이나에서 건조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2001년 베트남으로 귀국해 부동산 업체인 빈컴을 설립했고 사업을 확장, 2011년 빈그룹을 만들었다. 현재 빈그룹은 부동산업뿐 아니라 소매, 자동차 제조, 스마트폰 생산까지 도맡으며 베트남 대표 그룹으로 성장, '베트남의 삼성'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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