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직면한 미국인들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면서 미국 내 신용카드 대금 규모가 사상 최초로 1조달러(약 1300조원)를 돌파했다.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미국인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8일(현지시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공개한 가계신용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미국의 신용카드 대금은 전기 대비 4.6%(450억달러) 증가한 1조300억달러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대금이 1조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 최고치는 9860억달러였다. 뉴욕 연은은 보고서를 통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첫해에 급격한 위축을 보인 후, 신용카드 대금이 전년 대비 7개 분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전년 대비로는 16.2% 늘어나 강한 흐름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는 고강도 금리 인상과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가 탄탄한 수준을 지속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는 평가다. 뉴욕 연은은 "지난해 미국 소비자들이 직면한 고금리, 인플레이션 압력, 은행발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광범위한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신용카드 보유자들이 총 3조6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신용 가용성을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신용카드 대금이 증가할수록 부채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 대금은 카드사에 월별 청구액을 납부하기 전까지 가계부채로 잡힌다. 2분기 미국의 총 가계부채는 전기 대비 0.1% 늘어난 17조600억달러로 집계됐다. 가계부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잔액(12조100억달러) 큰 변동을 보이지 않으면서 전체 증가세는 크지 않았지만, 신용카드 대금 증가폭이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두드러졌다.
2분기 자동차 대출 잔액은 200억달러 증가한 1조5800억달러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학자금 부채 규모를 넘어섰다. 학자금 대출 규모는 350억달러 줄어든 1조5700억달러로 집계됐다. 현지에서는 연방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제동을 건 최근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 오는 10월부터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 연은은 "증가하는 신용카드 대금이 일부 대출자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고, 올가을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역시 많은 학자금 대출자들에게 추가적인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면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30일 이상 카드 대금 연체율은 1분기 6.5%에서 2분기 7.2%까지 올랐다. 이는 2012년1분기 이후 최고치다. 다만 뉴욕 연은은 이러한 연체율에 대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팬데믹 기간 연체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다'는 설명이다. 연령대별로는 18~29세 미국인들의 카드 연체율이 8.8%로 가장 높았다. 이어 30~30세 7%였다. 40세 이상의 연체율은 5%를 밑돌았다.
미국인의 약 69%가 2분기 현재 신용카드 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19년12월의 65%, 2013년12월의 59%보다 늘어난 수치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7000만개 이상의 신규 신용카드 계좌가 개설된 것으로 집계된다. 다만 올 들어 대출 등 신용 여건이 강화되는 추세도 확인된다. 6월 신용카드 신청 거부 비율은 21.8%로 2018년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앞서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개한 고위 대출책임자 설문조사에서는 불확실한 경제전망 등을 이유로 최근 미 은행권의 대출 기준이 엄격해지고 수요 또한 약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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