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미국은 싫지만 아이폰은 사고싶어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중국서 여전히 잘 팔린 물건이 있다. 바로 미국 애플의 ‘아이폰’이다. 애플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보다 8% 증가한 157억6000만달러(약 20조4769억원)를 기록했다. 글로벌 매출이 전년 대비 1% 줄어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성적과 대조적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시장에 대해 "확실한 매출 가속화를 보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상하이의 한 애플 매장에 중국인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블룸버그 통신)

상하이의 한 애플 매장에 중국인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블룸버그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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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아이폰 사랑은 각별하다. 로컬 기업의 중저가형 핸드폰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종은 단연 아이폰이다. 2분기 애플의 중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6%로 전년(15%)보다 확대됐고, 출하량도 지난해보다 5% 늘었다. 같은 기간 점유율 1위 비보(20%)와 2위 오포(18%)의 출하량은 각각 14%, 4% 뒷걸음쳤다.


애플로서는 최근 휴대폰, 노트북, 자동차 등 비교적 고가의 내구재가 잘 팔리지 않는 중국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과다. 지난 4월 기저효과로 18%대까지 치솟았던 중국의 월간 소매 판매는 6월 3.1%까지 내려앉았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같은 달 0%를 기록했다. 모든 경제 지표는 소비 심리 위축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아이폰은’ 샀다. 사과 문양이 찍힌 휴대전화와 노트북, 액세서리와 서비스에 우리 돈 20조원 이상을 지출했다. 지난 3년간 길어진 실내생활 탓에 평년 대비 휴대전화를 자주 교체했던 것을 감안하면 대체 불가의 기호품임을 증명한 셈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 압박이 거세지며 중국 내 대미 정서도 악화하고 있는 와중이다. 미국을 싫어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중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연 것이다.


비슷한 현상은 자동차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전기차 분야를 현지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도 미국 테슬라의 인기는 여전하다. 정치·외교와 소비 현장의 민심이 철저히 구분돼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을 자신들과 견줄만한 대국으로 인정하고, 한국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중국인들의 선입견과 정서적 교란도 존재한다.


한국의 마라탕과 탕후루 같은 중국 음식의 인기도 일견 유사한 맥락을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지난 2~5월 진행한 결과,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견해는 2019년 63%에서 77%로 증가했다. 그러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 음식의 인기는 오히려 열기를 더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냉동·간편 조리 식품 분야 인기 검색어에서 10대의 1, 3위가 탕후루, 아이스 탕후루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더욱 극심한 반중 정서를, 음식과 취향이 깬 셈이다.

이 아리송한 심리는 소비의 핵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고, 사고 싶고, 먹고 싶도록 만드는 자체 경쟁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함, 따라 할 수 없는 원조의 완성도에는 정치·외교의 진흙탕이 비교적 덜 튄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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