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원 미만 규모의 재정사업에 대해서도 별도로 적정성 검토 작업을 받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된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사업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꼼수’를 막자는 취지에서다.
2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500억원 미만 건축 시설 사업에 대해서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하는 ‘국립시설 사전 타당성 평가’를 지난해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추후 성과와 부작용 등을 평가해 정식으로 도입할지 검토할 계획이다. 올해까지는 100억원 이상 500억원 미만 사업에 대해서 적정성을 검토한 뒤, 내년에는 검토대상 사업의 기준을 2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거나 국비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이면 예타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에 대해선 KDI 같은 제3기관의 판단을 받아야 사업의 적정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타 조사 문턱을 넘지 않기 위해 사업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꼼수가 횡행한다는 점이다. 예타 조사에서 탈락한 경우 의도적으로 사업비용을 낮춰 사업을 재추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충청남도는 예타 조사에서 탈락한 서산공항의 사업비용을 낮추는 방법 등을 통해 사업을 재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재정 투입 사업 요구가 늘어나면서, 사업 적정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의 필요성도 커졌다. 정부 관계자는 “500억원 기준을 의도적으로 회피해 사업비를 책정해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정부 입장에서는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 때문에 건설로 인한 편익이 어느 정도 있고 시급한지에 대해 연구기관과 협의해서 예산안에 담을 필요가 있을지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예타가 아니기 때문에, 예타 만큼 엄격한 수준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식 사업으로 도입되기까지는 걸림돌이 있다. 총선을 앞둔 국회는 지난 4월 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통과시켰었다. ‘총선을 위한 포퓰리즘법’이라는 비판 여론을 감안해 전체회의 상정은 연기했지만, 500억원 미만 사업에 대한 추가 검증을 정식화하는 데 따른 정치권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사회간접자본(SOC)·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산 검증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타처럼 국립시설 사전 타당성 평가 역시 사업 승인과 예산 배정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다만 예산 당국 입장에서는 제3기관의 검증성 분석이 선행하면, 한정된 재정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음에도 중요한 이유는 해당 사업에 대한 정확한 기록들이 남아 보존된다는 것”이라며 “기록을 통해 향후에 명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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