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현장]②시행업계 10곳 중 7~8곳은 '좀비 사업장'

PF 전환 실패한 중소 시행사들 이자만 겨우
내년 총선 지나면 줄도산 우려
분양·홍보 업계 미수금에 골머리

#. 충남 천안에서 주택사업을 준비 중이던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 A사는 최근 사업을 중단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그동안 사업을 준비하며 투입된 자금과 기존 브릿지론(사업 초기 토지 매입 및 인허가용 단기 차입금) 대출 이자가 쌓여 수십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정부가 금융권을 압박해 브릿지론 대출을 연장해준 덕에 부도처리는 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좀비 사업장'이 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24일 시행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경착륙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내놓은 각종 PF 대책이 중소시행사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지난 1월 초 2조5000억원 규모의 ‘PF대출 보증’을 실시했지만, 신규로 지원한 PF 보증 등 정책금융은 1~4월까지 9000억원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HUG는 대출 실행을 위한 심사 시 사업장 위치, 현금흐름, 시공사의 시공능력순위, HUG 자체 신용등급 등을 평가한다. 재무구조가 취약하거나 수도권 외곽 사업의 PF 대출은 사실상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지방권에서는 PF대출 보증 성공 사례를 더 찾기가 어렵다.

PF대출 보증을 받기 위해선 보증을 원하는 사업장이 필요 서류를 제출하고 HUG에서 사업상 보증심사와 위원회 보증승인을 통해 보증서를 발급해주면 대출이 실행된다. 이 과정에서 HUG는 사업장에 대출의향서를 요청한다. HUG에 제출하는 대출의향서 내용에는 은행들이 발급해주는 PF대출용 여신의향서도 담겨야 하는데 최근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PF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려 발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정부가 금융사에 기존 집행된 브리지론 대출을 일괄 연장하도록 지도한 덕분에 대다수의 사업장은 부도를 면하고 있다. 하지만 연장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부도 처리될 좀비 사업장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중소시행사의 사업장 10곳 중 7~8곳가량이 좀비 사업장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한 시행사 대표는 "계약을 하고도 브릿지론에 실패하거나 브릿지론이 성사됐어도 PF 전환에 실패한 사업장들이 수두룩하다"며 "정부 보증 브릿지론 연장도 내년 총선까지라는 이야기가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내년에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선언하는 시행사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업계 위기는 분양·홍보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행사로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분양·홍보 대행사들이 여럿이다. 사업을 준비하다 진행이 안 됐거나, 분양했지만 미분양돼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올해 들어 부쩍 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6월 분양 예정이었던 3만7733가구(일반분양 2만9646가구) 중 예정대로 분양이 이뤄진 건 총 9766가구(일반분양 8368가구)였다. 지난 5월 분양실적률 또한 22%로 저조했는데 6월 또한 계획 물량 대비 분양실적이 낮았다. 차라리 대형 건설사를 끼고 계약했으면 미수금을 회수 못 할 가능성이 작지만, 시행사와 직접 계약한 경우라면 미수금 회수 부담이 더 높다고 한다.


국내 대형 건설사 분양 홍보를 맡고 A대행사 관계자는 "체감상 올해 상반기 물량이 지난해와 비교해 반으로 줄었다"면서 "매출 반토막도 문제지만 미수금 규모가 30억~40억원에 달한다. 시행사가 망하면 떼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채업자처럼 미수금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