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잇따라 견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다시 경고등이 켜지자, 그 핵심 원인인 부동산 관련 대출을 타깃해 우려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부동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성 향상 속도가 느리고, 가계부채 비율 악화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지금보다 자금이 '덜' 흘러가도록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주요국 대비 규제가 약한 전세자금 대출이다.
한은에 따르면 부동산업은 생산성 향상 속도에 비해 자금 집중도가 과도하게 높은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부동산업은 2002년 이후 실질 부가가치가 제조업, 전문과학, 전기장비 등 주요 산업에 비해 완만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출집중도는 2015년 이후 다른 산업보다 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17일 한은 경제연구원 이경태 부연구위원과 강환구 금융통화연구실장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부동산업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2배 이상 많은 대출 자금이 유입된 반면, 제조업과 전문과학 등 다른 주요 산업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의 대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보통은 실질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산업은 자금이 많이 배분되지 않는데, 유독 부동산업에 대해선 많은 자금이 쏠리고 있는 것"이라며 "자기가 창출하는 가치보다 두배 이상의 돈이 들어온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가의 전체적인 자원 배분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부동산업보다 생산성 개선 속도가 빠른 업종에 적절한 자금이 투입될 수 있도록 부동산 관련 대출 집중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한은이 이처럼 부동산업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현상을 타깃해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와 한국경제학회의 공동포럼에서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대출이 가고 있지 않다"며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더 생산적인 곳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면 문제가 된다"며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까지 내리기 위해 부동산담보 대출 등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런 부동산 자금 쏠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DSR 규제는 대출자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기준이 40%다. 만약 연 소득이 5000만원인 채무자라면 1년에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2000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DSR 원리금 산정 대상에 전세대출과 중도금 대출 등은 제외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금리인상기 이전까지 전세대출이 크게 늘면서 수도권 전셋값이 빠르게 올랐다. 개인 입장에선 전세대출을 받아도 다른 신용대출 역시 한도만큼 받을 수 있으니 가계대출 급증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DSR 규제에 전세대출은 물론, 이주비·중도금 대출 등도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 관계자는 "대부분의 나라는 DSR 산정에 예외 없이 모든 대출이 포함되고, 일부 국가만 학자금 대출을 빼준다"며 "우리나라도 점진적으로 예외대상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전세자금대출이 일부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되면서 주택가격 상승 및 주택시장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해 온 점 등에 비춰 볼 때 전세대출에도 DSR 규제를 일부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외국에는 전세 제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긴 힘들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가 약하고, 수혜 대상이 과도하게 넓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2009년 이전까지만 해도 전세자금 대출 보증한도는 1억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주택금융공사 기준 4억원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보증한도 상향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반대로 이같은 과도한 전세대출이 가능한 구조가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을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보증한도가 낮아) 전세대출 수혜 대상이 적으면 그 사람들의 주거서비스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만, 수혜대상이 과도하게 넓어지면 모두의 전세 구매력이 올라가 전세가격이 빨리 상승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그럼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갭(차이)이 작아지면서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 있는 유인이 생기고, 그게 다시 주택가격을 밀어 올리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택 가격 대비 주택담보대출 한도액을 정하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주요국과 비교해 강하기 때문에 주택 매매 대신 전세로 대출 수요가 몰린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LTV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DSR 등 전세 규제는 강화해 전세 수요를 매매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은이 연일 부동산 시장발 가계대출 증가에 우려를 표하고 있으나, 당장 대출 규제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는 최근 역전세 문제가 커지자 유동성 공급을 위해 일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서는 등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규제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야기한다며, DSR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은 역시 단기간에 제도 개편에 나서기보다는 시차를 두고 다른 부동산 관련 제도와 함께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전세를 사는 사람 중에서는 청약을 기다리며 매매를 미루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급격히 전세대출을 조일 경우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청약 등 제도도 같이 고치지 않으면 전세대출 수요를 분산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조금 시차를 두고 DSR의 예외대상을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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