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 총파업을 예고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일정대로 총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실제 총파업이 이뤄지면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보건의료노조에는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 직역 종사자가 참여하고 있어 의료 현장의 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체계를 점검하면서 불법 행위 발생 시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127개지부·145개 사업장 6만4257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율 83.07%에 91.63%(4만8천911명)의 찬성으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이번 투표 결과로 파업권을 확보한 조합원은 전체의 75.49%로 사상 최대 규모라는 게 보건의료노조 측의 설명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사용자 측의 불성실교섭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보건의료노조는 예정대로 13일 오전 7시를 기해 전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그간 ▲간병비 해결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1대 5 배정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불법의료 근절과 의사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과 회복기 지원 확대 ▲정당한 보상과 임금 인상 ▲노동개악 저지 등 '7대 요구 사항'을 제시해왔다. 이를 위해 앞서 5월부터 대사용자 교섭과 대정부 협의를 추진해왔지만, 누구도 책임 있는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노조는 12일 각 의료기관과 지역에서 총파업 전야제를 개최한 뒤 총파업 첫날인 13일 서울로 집결해 대규모 상경 파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14일에는 서울·부산·광주·세종 등 4개 거점파업 지역에 집결해 총파업 투쟁을 벌인다. 13~14일은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함께하고, 17일부터는 보건의료노조 자체 파업으로 전개된다.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환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는 필수 인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파업 참가 인원은 4만5000명 안팎으로 예상된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이 실현된다면 2004년 주5일제 쟁취를 위해 벌였던 총파업 이후 무려 19년 만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그간 산하 지부에서 파업이 이뤄진 적은 있어도 실제 총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이었던 2021년 9월 총파업 결의까지 이뤄지며 전운이 고조됐지만, 극적으로 노정합의가 타결되며 철회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이 모인 만큼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갖는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노조도 강경한 입장이다. 눈앞에 현실화한 의료 붕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연일 발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와 필수의료 공백, 의료인력 부족 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사용자와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의료는 위기를 넘어 붕괴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해결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의료붕괴에 따른 국민 고통과 피해는 극복될 수 없고,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암울한 미래 때문에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앞서 보건의료노조 동시 쟁의조정 신청에는 21개 사립대병원지부(29개 기관)와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26개 대한적십자사 지부, 26개 지방의료원지부, 19개 민간중소병원지부, 7개 정신·재활·요양 의료기관지부와 미화·주차·시설·보안 등 10개 비정규직지부(16개 기관)가 참여해 의료기관 규모와 유형을 총망라한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조규홍 장관 주재로 '제2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 비상진료대책과 유관기관 협조체계를 점검했다.[사진제공=보건복지부]
원본보기 아이콘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이 가시화되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제2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어 파업 관련 비상진료대책과 유관기관 협조체계를 점검했다. 회의에서는 지역별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관련 기관과의 협조체계 구축 등 비상진료대책을 논의했다. 또 지역 의료기관 내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유지 업무가 차질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행체계를 점검했다.
조 장관은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채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해서는 안 되며, 투쟁 계획을 철회하고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곁에 남아달라"며 "노조가 제기해 온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료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적극 수렴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월25일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발표 이후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간호사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 조기 전면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고 언급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7회에 걸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발전협의체'를 운영,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발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조 장관은 이번 회의에서 "정부는 노사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행사는 보장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한다는 기조를 확고히 견지해오고 있다"면서 "의료서비스 공백으로 국민의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지자체의 지역별 비상진료계획을 점검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시행해달라"고 당부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