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교수 "응급실 뺑뺑이, 제주도서 서울 목동까지 오기도"

의료진, 환자가 중증 호소하면 거부 어려워
"마음 놓고 필수 의료환경서 일하게 해줬으면"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일 환자가 입원할 응급실을 찾지 못해 숨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경증환자 문제를 꼽았다.


남 교수는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인터뷰에서 "환자, 보호자들이랑 경증환자 문제로 서로 논리 배틀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의료진이 패배하는 싸움이 된다"며 "'우리 애가 아파요', '중소병원 수액으로는 안 나아요, 권역센터 수액을 꼭 맞아야지만 나아요' 이런 부모들이 있다. 당연히 똑같은 수액이고 똑같은 약인데"라고 전했다.

부모가 자녀의 중증이라고 호소하면 중증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저희(의료진)가 '권역센터에서 아이를 받아서 음압실에 넣어서 3시간 동안 중증 환자 구역을 못 써야 합니까'라고 하면 '우리 애가 내가 봤는데 죽기 직전이다', '우리 애가 넘어지면 바로 중증 환자 되는 것 아니냐', '왜 말을 그렇게 하냐', '의사가 왜 말을 그렇게 하냐'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냥 받아주고 말지 저희도 그걸 끝까지 해서 지켜낼 명분이 없다"며 "그렇게까지 우리 애가 죽는다고 하면 받아주고 (다른) 중증 환자 못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8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2020년 8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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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지금도 사실은 경증환자가 가는 병원들, 그러니까 권역센터로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 이송체계가 있다"며 "하지만 큰 병원 가야 낫는다, 큰 병원 가야 오진이 덜 되고 억울한 꼴 안 당한다 이런 뿌리 깊은 인식들이 있어서 와서 버티면 저희가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남 교수는 "저희가 권역센터이다 보니 아주 많은, 소위 응급실 뺑뺑이 환자나 멀리서 오는 환자를 보는데 가장 멀리서 오는 분들은 제주도에서도 오신다"며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면 김포인데 김포에서 가장 가까운 권역부터 알아보면 우리 이대목동병원이 환자 수용의 2, 3번 순으로 가깝다"고 말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관련해서는 "정부 대책이 유독 직능, 권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이 환자가 도저히 처치가 안 되면 직권으로 그냥 너희가 받고 아니면 너희 처벌을 할게, 이런 법안들이 유독 많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강제로 말고, 어쨌든 저희는 그냥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그만두고 피부미용 가면 내가 훨씬 더 배 두드리면서 살 수 있는데' 이런 정도의 생각만 안 들게 해 줬으면 좋겠다"며 "그냥 마음 놓고 필수 의료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만 해 줬으면 이렇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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