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천문학적 반도체 보조금 살포…중복투자의 덫에 빠질라

지정학적 위험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확보
반도체 기업 자국 유치 사활
점유율 확대 어렵고 과잉생산 우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 인도까지 자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가세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유치에 나선 것이다. 지정학적 갈등 등 여러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생성형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첨단 산업의 ‘쌀’ 역할을 할 반도체를 제때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반도체 공급망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중복 투자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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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반도체 보조금 살포 경쟁…1000억달러 뿌려

지난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와 일본이 반도체 기업의 자국 유치를 위해 푼 보조금은 약 1000억달러(약 129조1600억원)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국가 안보와 경제 등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져 자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에 390억달러(50조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현재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한 기업은 200곳 이상이다. 이 중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는 미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정부에 최대 1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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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다. 일본 정부는 TSMC가 구마모토 현재 공장을 짓는데 드는 사업비 1조1000억엔(약 10조6000억원)의 40%인 476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EU도 보조금 경쟁에 합류했다. 독일은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 독일 반도체 공장 건설 사업비의 3분에 1에 해당하는 100억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독일은 TSMC와도 독일 드레스덴에 지을 공장 설립 건과 관련해서도 보조금 수준을 협의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인텔의 반도체 패키징 조립 공장 사업비의 40%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 인도 등 제 3국도 반도체 기업의 자국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인텔은 이스라엘로부터 공장 건설에 드는 250억달러의 사업비 중 12.8%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다. 인도는 최근 미·중 패권 경쟁으로 중국 공급망에서 이탈하는 기업들을 공략하고 나섰다.


인도는 자국 내 용지매입부터 시설설립까지 투자를 하는 기업들에는 최대 투자 금액의 50%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지방정부에도 10~25%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인도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는 미 마이크론의 경우 이런 지원책을 통해 총 13억 4000만달러의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게 됐다.

◆공급망 확보에 사활 건 국가…기업은 지정학 위기 기피

주요국들이 보조금을 뿌리면서까지 기업 유치에 힘쓰는 것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팬데믹 당시 중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수출 통로를 걸어 잠그면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 수급 문제로 큰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공급망 교란에 대처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업 리쇼어링(해외진출기업의 본국 회귀)에 돌입했다.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 중인 공장 오피스동 이미지[e이미지출처= JASM]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 중인 공장 오피스동 이미지[e이미지출처= J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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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치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도 막대하다. 글로벌 기업을 유치할 경우 이를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파급 효과가 발생한다.

예컨대 일본은 TSMC가 공장을 건설한 구마모토현 중심으로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일본의 유력 반도체 기업과 설비업체들이 TSMC를 따라 공장을 이전하면서 구마모토현이 주요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거듭난 것이다. 일본 규슈지역의 금융 그룹인 규슈파이낸셜그룹은 TSMC 진출이 향후 10년간 구마모토현에 4조3000억엔이 넘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추산했다.

◆중복투자로 과잉 생산 우려…英은 분산투자 택해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결국 중복 투자라는 점에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이 보조금을 얻고자 전 세계 곳곳에 공장을 확충하면서 반도체 기술의 분업화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생산 분야의 경우 대만과 한국, 미국, 중국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의 경우 네덜란드(ASML)가, 반도체 설계의 경우 영국(ARM)이, 반도체 연구 개발의 경우 벨기에(IMEC)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IMEC의 최고경영자(CEO)인 뤽 반 덴 호비는 "나라별로 반도체 산업 분야에 고유한 강점을 갖고 있다"며 "각국이 모든 기능을 수행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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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에서도 중복투자로 인해 시장 점유율 확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금 경쟁으로 각국에 공장이 세워지게 될 경우, 전체적인 공급량 자체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각국의 점유율을 높기 어렵다. 독일의 싱크탱크인 SNV의 반도체 전문가 얀 페터-클라인한스 연구원은 "최첨단 제조 능력에 대한 점유율은 지리적인 측면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조금 경쟁이 전례 없는 반도체 과잉 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인다. EU 내부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지난 2월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정부 관계자들이 EU의 반도체 지원법을 앞두고 반도체 과잉 생산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들 국가 중 일부는 정부의 지원이 유럽 기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일부 회원국들이 보조금 경쟁이 반도체의 과도한 생산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공급량 증가에 따른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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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다른 국가들과 다른 전략을 도입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유리한 분야에만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다. 지난달 영국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10억파운드(약 1조65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예산 규모는 적지만 영국은 자국이 강점을 가진 디자인 설계와 화합물 반도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반도체 생산은 일본과의 파트너십에 맡기기로 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영국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이 가진 제조업 강점이 영국이 가진 디자인 설계의 기능과 맞물려 상호 보완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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