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인텔, AMD와는 달리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독점 구조다. 인텔과 AMD 간 CPU 경쟁 심화는 CPU 시장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나 GPU 시장은 장기화된 엔비디아의 독점 구도를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GPU 생태계에서 엔비디아는 어떻게 독점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을까.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커티스 프림 등과 뜻을 모아 1993년 엔비디아를 만들었을 당시는 CPU만 대접받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PC 제조사들이 인텔이나 AMD가 만든 칩을 탑재하던 때였다. 엔비디아가 주력 사업으로 꼽은 컴퓨터 그래픽 분야는 비디오 게임, 컴퓨터 게임회사들만 관심 있어 하는 틈새시장 분야였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저서 '칩워'에서 엔비디아가 장기간 GPU 시장 독점 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핵심을 소프트웨어 쿠다(CUDA)에서 찾았다.
실리콘밸리 산호세 한 레스토랑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엔비디아는 GPU 프로세서를 개발하는데 멈추지 않고 그래픽 관련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황 CEO가 쿠다 프로젝트에 투입한 돈은 1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쿠다는 GPU에서 수행하는 병렬 처리 알고리즘을 산업 표준 언어를 사용해 만들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이 아키텍처를 사용하려면 엔비디아 GPU와 특별한 스트림 처리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표준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컴퓨터 그래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고속 병렬 계산을 활용할 수 있게 한 엔비디아는 쿠다를 그래픽 전문가뿐 아니라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 공개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가 엔비디아 칩에서만 작동하게끔 하면서 엔비디아는 쿠다의 활용이 넓어질수록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엔비디아의 고객층이 게임 회사에서 그치지 않고 AI·데이터 사이언스·자율주행·로봇 등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 고속 병렬 계산의 가장 큰 수요처는 AI로 통한다. CPU 시장은 인텔과 AMD의 경쟁 심화가 펼쳐지고 있지만 GPU만큼은 쿠다 프레임워크의 종속 효과가 이어지며 엔비디아의 장기화된 독점 구도가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현재 GPU 수요가 더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GPU나 하드웨어 가속기에 기반해 이뤄지는 가속 컴퓨팅은 높은 효율성과 AI 및 빅데이터에 특화돼 있다. 생성형 AI를 접목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데이터센터 인프라는 기존 CPU 기반 일반 컴퓨팅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GPU를 사용한 가속 컴퓨팅화로 변화하고 있는 것.
한편 엔비디아가 독점적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시장에서 반도체업계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은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 반가운 소식이다. 현대차증권의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가 약 3만개의 GPU를 슈퍼컴퓨터 1개 사이트에 공급할 경우 사이트당 약 6억~12억달러의 매출 발생이 가능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는 약 2300만~4500만개 정도로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반도체 수요 침체기에 엔비디아발 HBM 수요 확대가 반도체업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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