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시민단체의 힘, 투명성에서 나온다

방치된 보조금 관리, 어디로 새는지도 몰라
목적 선하다고 과정 어긋나면 국민 납득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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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부금 사용 문제로 논란을 겪은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당시 세부내역 공개 요구에 "세상 어느 NGO(비영리단체)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느냐"고 답해 더 큰 공분을 샀다. 당시에도 기부금을 모집목적 외 용도로 사용하거나 허위 공개할 경우, 등록말소까지 가능한 법은 있었다. 하지만 정의연은 "너무 가혹하다"는 핑계를 대 다른 시민단체로부터 기부금 횡령으로 고발을 당했고, 정부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혐의까지 추가됐다.


3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실태조사를 해보니 내가 낸 세금은 여전히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었다. 이 기간 1만2000여 시민단체에 지급된 6조800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금 중 총 1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된 부정사용금액만 314억원이다.

국민의 혈세가 쓰인 부정·비위 사례를 보면 더 가관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문화사업·공공외교·청소년 보호 등을 내세워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타낸 한 시민단체 본부장은 이 돈으로 자녀에게 주택을 사주고 손녀에게 말을 선물했다. 세월호 관련 단체는 보조금을 타내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이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전(前) 정부에서 시민단체 보조금이 빠르게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굳이 힐문할 필요도 없다. 문 정부 5년 동안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이 매년 평균 3555억원 꼴로 급증한 반면 2016년 이후 전 부처에서 적발한 문제 사업은 153건, 환수 금액은 34억원 뿐이다.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보조금의 부정 사용을 "납세자에 대한 사기행위",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행위"로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혈세가 국민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며 이를 부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요식행위로만 혈세 낭비를 지적했던 전 정부들과 달리 각 부처와 공무원에 책임을 묻겠다고 한 점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보조금 선정과 집행 과정에서의 관리·감독 체계도 살피겠다는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사업자뿐 아니라 담당 공직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시작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연간 정부 조달액 가운데 약 7조원을 사회적 기업 등에 몰아주는 사회적경제기본법(사경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연 70조원에 이르는 공공기관 재화·서비스 구매액의 5~10%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에 할당하는 사회적 기업 지원책이다. '시민단체 퍼주기법'인 만큼 시민단체의 투명성을 높이고 혈세 낭비를 줄이겠다는 정부와 반대로 가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여야할 것 없이, 국민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려주는 일에 힘을 보태야한다. 당정이 추진하는 시민단체의 '외부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 확대 개정은 물론, 사경법을 여기저기 조건으로 끼워 넣는 행위도 멈춰야한다.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중소기업과의 역차별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면 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보조금 예산 전면 재검토'를 '보조금 구조조정'으로만 해석하지만 잘못된 것은 도려내고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시민단체 활동이 위축되고 시민사회 자율성까지 줄어들 것을 우려하지만 시민단체의 진정한 힘은 '투명성'에서 나온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을 감시하고 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한다. 목적이 선하다고 과정을 등한시하면 결과에 납득할 국민은 없다.





배경환 정치부 차장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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