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과 고령화로 지방 소멸을 겪고 있는 일본이 기차역 플랫폼에 진료소를 두고 지역 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열차 노선 인근에 사는 주민이라면 이른바 '플랫폼 진료소'를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지방 의료 격차를 메우는 해결책으로 꼽힌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은 철도회사 JR동일본 니시코쿠분지역에 위치한 플랫폼 진료소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JR 주오선 상행선 승강장에 위치한 이 진료소는 검사실과 온라인 비대면 진료 전용 부스를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병원'이다.
진료소 내부에는 '대기시간 5분', '꽃가루 알레르기 약 처방도 가능' 등 안내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다. 실내는 검사실 등 일반 병원과 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니케이는 "시내 병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기차 브레이크 소리가 울릴 때마다 지금 있는 곳이 역 승강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고 전했다.
이 진료소는 의료법인 소우세이카이가 운영하고 있다. 방문자만 하루 평균 30~40명에 달한다. 내과의 경우 대면 진료를 하기 때문에 예방 접종 등 다양한 처치가 가능하다. 피부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는 온라인 부스를 통해 다른 지역의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소우세이카이 관계자는 "고성능 의료 카메라를 도입해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진료를 할 때보다 환자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진료소 이용시간은 기차역에 위치한 만큼 출퇴근이나 등교 전, 귀가 시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평일 진료 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길게 설정했다. 휴일과 공휴일에도 문을 열기 때문에 원래 다니던 병원이 휴진하는 날에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구와이 타로 소우세이카이 이사장은 "일반 진료소는 반경 2~3㎞ 내에 거주하는 주민 진료에 국한되지만, 역 승장강에 있는 진료소는 이용객을 노선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도회사인 JR동일본이 의료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다. 그간 JR동일본은 쇼핑센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업시설을 주요 역에 배치해 수익을 창출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용객 자체가 줄면서, 역사 활용방안을 새로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역 안에 진료소를 두는 방식이었다.
니케이는 "진료소 사업에는 승산이 있어 보인다"며 긍정적인 시각을 내놨다. 일본에서는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일본 국토교통백서에서는 2050년에는 전국 66%의 시정촌(지방자치단체)에서 인구 감소로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JR동일본도 지방을 잇는 로컬 선이 2021년도에 이미 679억엔(616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JR동일본은 무인역에 비대면 진료소를 만드는 등 이 진료소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JR동일본의 관련 사업 담당자는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집에서 몇 시간씩 거리의 도시 병원에 다니는 고령자도 많다"며 "초진만이라도 가까운 역에서 간편하게 받고 싶다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진료는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소를 마련할 수 있고, 도심 대형병원과 연계하면 이용자는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도 누릴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의료 격차 해소로 이어져 역 주변 도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JR동일본의 구상이다.
다만 무인역의 온라인 진료는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니케이는 "예약 사이트나 원격 진료 장비 조작을 간소화하는 등의 과제가 신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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