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쓰여야 할 통일부 남북협력기금 가운데 일부가 간첩 활동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주노총 전직 간부 등이 기금 지원을 받아 북한을 방문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13일 5차 회의를 열고 김기웅 통일부 차관으로부터 남북협력기금 자체 감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특위는 남북협력기금 가운데 일부 억대에 달하는 비용이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자의 방북 비용으로 쓰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특위 위원으로 활동 중인 서범수 의원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직 간부 A씨는 2004년 민주노총 경기본부 소속으로 활동할 당시 북한에서 열린 '남북 노동자 통일대회'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해당 행사에는 통일부 남북협력기금이 지원됐으며, 인적왕래지원 명목 예산 1억300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인물이다. 정보 당국은 그가 2000년 전후로 북한 공작원과 비밀리에 연락하는 등 간첩 활동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A씨의 구체적인 혐의는 간첩 및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으로 알려졌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마련된 국가 예산이 공작원 활동을 하던 간첩의 방북 노잣돈으로 쓰인 셈이다.
아울러 전북민중행동 소속으로 북한 공작원과 80차례 이상 회합한 것으로 알려진 B씨의 활동에도 남북협력기금이 흘러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007년 '6·15 민족통일대축전'이라는 행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었는데, 당시 이 행사에는 남북협력기금 예산 3억1000만원이 지원됐다. B씨는 A씨와 베트남 하노이,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5차례 이상 접촉했으며, 국내 주요 정세·동향을 보고한 혐의로 올해 1월 불구속기소 됐다. 그가 간첩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2007년 4월 전후로, 남북협력기금으로 방북하기 불과 2개월 전이었다. 서범수 의원실이 확보한 B씨의 공소장에는 '탄핵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등 문구가 보고되거나 고구마·박스·택배 등 음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북측 공작원과 회합 일정을 조율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특위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대해서만 특혜성 기금 지원이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민간단체가 38차례에 걸쳐 전세기로 방북을 했는데, 양대 노총이 참석한 행사에만 전세기 비용이 지원됐다는 것이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결과적으로 간첩 활동을 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 지원받은 돈이 남북협력기금"이라며 "국민의 혈세로 간첩 활동을 하도록 도와준 것은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와 각 지자체가 남북협력기금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2004년과 2007년 관련 행사에 남북협력기금이 지원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당시 지원 과정에서 절차상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내부적으로 상세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사정 당국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협력기금은 법에 따라 남북 주민들의 교류에 필요한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 문제가 된 특정 단체 지원이 이뤄진 2004~2007년 기금 가운데 인적왕래지원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은 205억으로, 실제로 최종 집행된 액수는 118억 2900만원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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