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화 가치가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성공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환위기급 후폭풍이 닥칠 것이란 경고와 함께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제 파탄에도 포퓰리즘과 팽창주의를 앞세워 승리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정상적인 경제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튀르키예 경제가 앞으로도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29일(현지시간)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20.1050리라에 거래돼 지난 26일 기록한 사상 최저점(20.06)을 돌파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튀르키예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에 리라화 매도세가 잇따랐다. 그동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 등 비정통적인 경제정책을 취하면서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다. 물가 상승률만 지난해 10월 기준 85%에 달한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날 재선 성공 후 저금리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리라화가 더 밀렸다. 리라화는 이미 연초 이후 달러 대비 7%, 지난 10년간 90% 넘게 하락했는데 앞으로도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는 리라화 가치가 연내 달러당 28리라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리라화 매도는 튀르키예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바녹번 글로벌 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수석 시장 전략가는 "리라화 매도 압력은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촉발한 것이 아니다"라며 "튀르키예를 떠나려는 (국내) 자본이 외국인 보다 많다"고 짚었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미 외국인 투자 비중은 2020년 65%에서 현재 28.7%로 하락, 많은 외인들이 튀르키예 시장에서 이탈한 상태다.
덴마크 상업은행인 단스케방크의 민나 쿠시스토 수석 애널리스트는 "경제정책의 유턴 없이는 극심한 외환위기가 닥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튀르키예 외환보유고는 현재 외화, 금을 포함해 총 1010억 달러 규모다. 하지만 부채를 제외한 순 외환보유고는 '0달러' 수준이며 현지 은행에서 빌린 수백억 달러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라는 게 JP모건의 추산이다. 골드만삭스의 클레멘스 그레이프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튀르키예) 외환보유고는 이전에 리라화 변동성이 급격이 치솟았던 시기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외환보유고 급감으로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튀르키예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697.10bp로 전거래일(673.03bp) 보다 상승했다. 이달초 531.18과 비교하면 한달도 안돼 165.92bp나 치솟았다.
이날 튀르키예 증시의 'BIST-100 지수'는 선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전거래일 대비 4.1% 상승했다. 하지만 단기 랠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오히려 리라화 가치 하락과 튀르키예 국채 매도가 지속되면서 정부 재정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에곤 자산운용의 제프 그릴스 이머징마켓 채권 헤드는 "이번 선거 결과는 국가 펀더멘털 하락을 이끈 (에르도안의)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며 "리라화 평가절하와 낮은 외환보유고에 대한 압박은 채권 투자자들의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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