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시장에선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1분기에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장기적인 시장 변화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시스템 반도체 기업으로 또 다른 미국 업체인 엔비디아는 챗GPT 효과로 깜짝 실적을 냈다. 엔비디아 훈풍이 국내 메모리 업계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26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1분기 D램 시장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본격화한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1분기 D램 시장 매출은 전분기(122억6900만달러)보다 21.2% 급감한 96억6300달러를 기록했다. D램 주요 업체 매출 역시 줄었다. 다만 감소 폭은 기업별로 달랐다. 그 결과 점유율이 달라지면서 2, 3위 순위가 바뀌었다. 1분기 ▲삼성전자(43.2%) ▲미국 마이크론(28.2%) ▲SK하이닉스(23.9%) 순으로 점유율을 기록,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를 제쳤다. 2014년 1분기 이후 9년 만의 순위 변동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서 올해 1분기로 오면서 매출이 24.7%, 31.7% 급감했다. 점유율 역시 2.0%포인트, 4.7%포인트 내려갔다. 반면 마이크론은 1분기 매출이 전분기보다 3.8% 줄어드는 데 그치면서 점유율이 5.1%포인트 올랐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당 시기에 출하량이 줄고 평균판매가격(ASP)도 떨어지면서 이같은 결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마이크론의 경우 작년 말 받은 주문에 힘입어 출하량을 늘린 결과 매출 감소를 경쟁사보다 줄였다고 평가했다.
실제 3월 마이크론은 회계연도 2023년 2분기(2022년 12월~2023년 2월) 실적을 발표하며 전분기보다 D램 판매량이 10% 중반대로 늘었다고 밝혔다. 해당 분기 마이크론 영업손실은 23억300만달러(약 3조 611억원)로 SK하이닉스 1분기 영업손실 규모(3조4020억원)보다 적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까지 포함한 전체 반도체 사업(DS부문)에서 4조5800억원의 적자를 낸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레거시(구형) 반도체 비중이 높은 마이크론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반도체를 공급하며 재고 소진을 통해 출하량과 점유율을 끌어올렸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다만 이번 순위 변동이 유의미한 시장 변화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시적인 효과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조사업체별로 점유율 통계가 다른 데다 업계에서 주로 살피는 통계는 아니다 보니 향후 다른 통계를 통해 신뢰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가 순위 변동을 겪는 사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깜짝 실적이 나왔다. 미국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2024년 1분기(2023년 2~4월)에 전년 동기보다 13% 줄어든 1억9000만달러 매출을 올렸다. 마이너스 성장이지만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매출이 14% 늘어난 42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떠오르면서 AI 서버에 필수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는 엔비디아가 수혜를 입은 것이다.
업계에선 엔비디아 선전이 곧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업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AI 서버에서 GPU와 함께 고성능·고용량 D램이 함께 탑재돼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일반 D램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렌드포스 통계를 보면, 지난해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40%)와 SK하이닉스(50%) 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엔비디아와 함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도 상승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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