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비용·자원’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얘기다. 배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저장·공급 장치의 대세다. ‘배터리 기술 1위’인 우리나라가 이 같은 기회를 충분히 누리려면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에서도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새 배터리를 연구개발(R&D)하고 판매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쏟아져 나올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뒷받침해 줄 경우 선순환이 가능해 더욱더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 감축 노력,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폐배터리 재활용을 촉진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배터리 제조 과정 중 이산화탄소 발생은 셀 단계가 20%, 양·음극재 등 주요 원료·소재 단계에서 80%를 차지한다 . 코발트·니켈 등 중국산 원료를 사용할 때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를 명분으로 원료수급·리사이클링을 연계해 배터리 밸류 체인을 새로 구축하려 하고 있다. 유럽의 양극재 기업인 유미코어(Umicore)·바스프(BASF)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중국 중심의 양극재 공급처를 대체하기 위해 건식 리사이클링 파일럿을 운영하는 등 R&D에 나서고 있다.
또 무엇보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희유금속(Rare Metal)이 점점 가격이 오르고 고갈되어 가면서 안정적 재료 확보 차원에서 재활용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 희유 금속들은 매장·생산이 일부 국가들에 편중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폐배터리 해체·파쇄·연소 등을 거쳐 회수해 다시 활용하는 게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리튬의 경우 우리나라는 매장량이 없어 매년 1만t이 넘는 양을 100% 수입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탄산리튬의 국제 시세는 2021년 2월 t당 9000달러에서 지난해 2월 5만5000달러로 511% 치솟았다. 수산화리튬도 같은 기간 380%나 급등했다. 니켈도 배터리용 글로벌 수요가 2018년 4만t에서 올해 28만7000t으로 연평균 50%씩 성장하면서 안정적 확보가 필수다. 최근 최대 수출국 인도네시아가 원광석 수출을 금지하면서 더욱더 절실해졌다. 코발트도 2022년 t당 8만달러로 국제가격이 치솟았다. 최대 생산국 콩고의 정정 불안 등 공급 불안정성이 확대돼 가격이 계속 상승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 소재 사용을 사실상 제한하기로 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재 채굴·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논란도 해소할 수 있다.
폐배터리 시장 주요 공급처는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IT기기 등이다. 이 중 전기차의 몫이 가장 크다.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전기차 배터리는 보통 수명이 5~10년 정도다. 전기차가 늘어나고 있는 속도만큼 폐배터리 공급량도 급속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전기차 폐배터리 발생량은 2020년 275대에서 2030년 10만7520대로 급속 증가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2020년 글로벌 배터리 출하량은 221GWh인데 연평균 32% 성장해 2030년엔 3670GWh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 중 전기차용 배터리의 비중은 2020년 65%에서 2030년 89%로 더욱 커진다. 전기차 수요가 배터리 시장 성장을 주도한다는 얘기다. 2020년 SNE 리서치는 전 세계적 폐배터리 재활용시장이 연평균 33%씩 성장해 2040년대에는 규모가 약 68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나 기업들도 폐배터리 재활용 R&D와 산업화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미국은 배터리 재활용률을 현재 5%에서 90%로 높이기로 하고 인센티브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도 2030년까지 일정 비율 재활용 소재 사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중국도 니켈·코발트·망간은 98%, 리튬은 85%까지 회수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희유금속 회수를 상용화한 곳은 우리나라의 성일하이텍, 독일의 Umicore, 중국의 Brump·GEM 등 4개 업체가 대표적이다. 습식 또는 건·습식 혼합법이 활용된다. 습식은 방전 등 전처리 공정을 마친 후 물에 가라앉혀 철과 알루미늄을 분리한 후 황산용액으로 녹여서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반면 건·습식 혼합법은 폐배터리를 고온으로 녹인 후 매트와 슬래그로 구분해 매트에서 금속을 추출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일하이텍 외에도 삼성SDI·SK이노베이션·LG 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3사와 에코프로, 두산중공업 등 많은 업체들이 공정·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세계적으로도 테슬라, CATL 등 글로벌 기업과 배터리 제조 전문 업체들이 경쟁 중이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약 81.1%(2020년 기준), 약 3.7년 뒤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같은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대용량인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더욱더 가다듬어야 한다. 손정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활용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원료가 어떤 것인지, 회수 상태, 공급량, 정부 보조금 유무, 회수 기술 수준 등이 변수"라며 "아직까지 많은 변수가 유동적이어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을 논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게가 500㎏ 안팎인 전기차 폐배터리는 방전·해체·분쇄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폭발 위험까지 있다. 또 팩 전체 무게의 40%를 차지하는 케이스·냉각장치·케이블 등의 장치들을 자원화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손 책임연구원은 "리튬의 경우 회수율이 95% 이상 되어야 하는데, 공정이 복잡해서 맞추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그동안 셀·모듈 단위로만 연구됐지 팩 전체를 재활용하는 연구도 이제 막 시작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친환경차가 대세인 데다 앞으로 전기차 폐배터리의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올 예정이며, 중국산 소재의 공급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면서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수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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