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정신을 오늘의 정의로" 43주년 5·18전야제

민주평화대행진에만 3000여명…무대·인파 역대 최대 규모

80년 5월의 그날처럼 교복 입은 학생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도 주먹밥 만들고 본 행사 관람해 눈길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여러분 도청을 향해 나와주십시오."


오월 풍물패 단원들이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사진=민현기 기자]

오월 풍물패 단원들이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사진=민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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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군사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투쟁의 현장인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 전야제를 통해 43년 전 그날이 재현됐다.

광주 수창초등학교에서 옛 전남도청 앞까지 약 1.5㎞ 구간을 행진하는 민주평화대행진에는 3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고려인마을 동포와 북한이탈주민 등이 앞장 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는 모습은 마치 1980년 5월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계엄군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과 같았다.


행진이 진행될수록 주변에 있는 시민들이 가담하면서 규모는 계속해서 늘었다. 순식간에 7000여명이 된 인파는 금남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1980년 5월의 그때처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부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까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시민들의 마음은 같아 보였다. 43년 전에는 '민주주의', 지금은 '43년 전 5월의 광주정신'이다.


어린 손주를 데리고 전야제를 보러 나온 정모(69)씨는 "광주시민으로서 자식에게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에게 5·18을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커가면서 민주열사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알아가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가족들과 함께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옛 전남도청까지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전일빌딩 앞에 마련된 무대를 바라보고 앉아 5·18 행사위가 준비한 공연을 관람했다.


총체극은 총 7부로 진행돼, 시작과 함께 5·18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고 장내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이어 오월정신의 상징인 주먹밥 나눔과 집단발포 등 당시의 5·18 요소요소를 선보였다.


전야제에 참석한 대만 국적의 창이수(39)씨는 "광주에서도 대만을 많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대만에서도 큰 희생을 감내하면서 민주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아픈 역사 끝에 아름다운 열매가 있다는 믿음을 변치 않게 해주는 행사다"고 말했다.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온 가족들도 있었다. 강원도 속초에서 6시간을 운전해서 광주를 찾은 이병철(44)씨는 "올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역사를 교과서만이 아닌 현장을 직접 가보며 가르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에서 전야제도 보고 5·18에 관해 공부하면 평생 잊지 못할 배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전야제에는 전두환씨를 대신해 거듭 사죄해 온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전씨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오월어머니 광주 주먹밥 부스에서 주먹밥을 만들면서 오월의 광주정신을 되새겼다. 또 전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행사에 누가 될 것을 피하려는 듯 대열의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행사를 지켜보기도 했다.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기자 hyunk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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