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위 자동차 공조 시스템 업체 한온시스템이 노동조합의 무기한 전면파업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무직 인력 유출이 심화되면서 노조가 공격적인 임금협상에 나선 영향이다. 노사 협상이 길어지면서 파업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온시스템의 전기차 열관리 부품을 공급받는 현대차·기아도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온시스템 노조는 지난달 12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최근 몇 년간 하루 이틀짜리 단기 파업은 있었지만, 이번 같은 장기 전면 파업은 10여년 만이다. 생산·사무직군 노조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생산라인 90%가량이 멈췄고 고객사 대응도 어려운 상태다. 지금까지는 쌓아둔 재고로 대응하고 있지만 파업이 더 길어지면 현대차·기아까지 생산 차질 여파가 미칠 수 있다.
한온시스템 노조는 생산직이 아닌 사무직 처우 개선에 이번 파업의 초점을 맞췄다. 최근 한온시스템의 사무직군 인력 유출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에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사무직군에서 과장급 이직자만 100여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급 인재들이 경쟁사로 빠져나가면서 인력 이탈 심각성을 노사 모두 공감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는 임금협상을 평년보다 앞당겨 지난 2월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9일 협상까지도 임금 인상폭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한온시스템 사무직 초봉이 수년째 동결이라고 지적했다. 기본 베이스가 낮다보니 승진을 하더라도 동종업계보다는 낮은 연봉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경쟁사로의 인력 이탈을 불러온다는 설명이다.
사측도 이에 공감하고 노사협상에서 임금 인상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인상 폭을 두고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한온시스템이 매각을 앞둔 상황에서 경영진 내에서도 임금 인상에 대한 의견이 나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온시스템은 현대차 아이오닉 5·6·7, 제네시스 전기차 GV60·GV70·G80 등에 열관리 히트펌프를 납품하고 있다. GM 쉐보레 볼트 EV, 포드 이스케이프 HEV, BMW iX·iX3·i4, 메르세데스-벤츠 EQS·EQE·EQA, 볼보 XC40 리차지 등 글로벌 해외 완성차 브랜드에도 친환경차 부품을 공급한다.
한온시스템은 940%에 달하는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노조는 직원 임금은 수년째 동결인데 배당금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당기순익을 넘어서는 배당금은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온다. 이 때문에 대주주인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매각을 앞두고 무리한 자금 회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한온시스템의 배당성향은 940%. 당기순이익(204억원)보다 무려 9.4배 많은 1921억을 배당했다. 이중 대주주인 한앤컴퍼니가 가져간 금액은 배당 총액의 절반인 970억원이다. 최근 5년간 한온시스템은 배당성향을 50~60% 수준에서 유지해왔다. 30% 내외 수준인 자동차 섹터 평균 배당성향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순익이 전년 대비 15분의 1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든 반면 배당은 평년 수준을 고수하며 배당성향이 900%대로 폭등했다.
이같은 재무지표를 반영해 지난해 신용평가회사도 한온시스템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단계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신용등급 하락의 이유로 해외 생산설비 확장, 친환경차용 부품 개발·고도화에 따른 투자금 증가와 더불어 연 2000억원에 달하는 배당금 총액 부담을 언급했다.
한온시스템 노조 관계자는 "매각을 앞두고 분기 배당금은 계속 빠져나가는데 미래차 기술 개발 인력을 위한 비용은 늘지 않고 있다"며 "이번 파업은 회사의 장기 비전을 짊어질 인재들을 잡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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