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이천시에서 쌀과 밀가루를 가공해 떡볶이용 떡을 제조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유모 대표. 유 대표는 일년에 두차례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할때마다 울상이다. 원재료로 구입하는 농축산물은 면세품이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공제받을 금액이 많지 않아서다. 유 대표는 갈수록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데 한번에 목돈이 나가는 부가세 정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는 식당과 마트 등에 파는 떡볶이떡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유 대표처럼 농축산물을 원재료로 주로 사용하는 사업자들을 위해 '의제매입세액공제'라는 게 있다. 사업자는 원재료를 구입할 때 소비자로서 부가세를 낸다. 이 원재료로 물건을 만들어 팔면 이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부가세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통상 사업자는 국세청에 부가세를 납부할 때 원재료 구입 당시 지출했던 부가세를 제하고 내면 된다. 하지만 농축산물과 같은 면세품엔 부가세가 없기 때문에 공제받을 금액이 없다. 의제매입세액공제는 이런 경우라도 일정 금액은 부가세를 냈다고 인정해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농축산물 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의제매입세액공제는 면세품 매입금액에 일정 비율의 공제한도와 공제율을 곱해서 산정한다. 그런데 식품제조업과 음식점업 등 업종에 따라 공제율이 다르다. 식품제조업의 경우 떡방앗간·과자점업·도정업·제분업 등은 5.66%, 중소기업·개인사업자는 3.84%, 그 외 사업자는 1.96%다. 음식점업에서 과세유흥장소 경영자는 1.96%, 일반음식점은 7.4%(과세표준 2억원 이하는 8.25%), 그 외 사업자는 5.66%다. 제조업에 비해 음식점업의 공제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식품제조업자들은 음식점업과의 공제율 차등적용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쌀가공업체 대표는 "같은 원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파는 똑같은 자영업자인데 음식점업에 세제 혜택을 더 주는 건 불합리하다"며 "일손 부족과 설비 노후화로 가뜩이나 제조업하기 어려운데 정부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2019년 기준 의제매입세액 공제액은 2조8974억원이다. 이 중 음식점업이 2조5138억원으로 86.7%를 차지한다.
갈수록 쌀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오히려 제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쌀가공협회 관계자는 "밥쌀 소비 감소로 상당수의 쌀을 가공식품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쌀을 포함한 농산물을 가공하는 제조업자에 세제를 지원해 쌀 소비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쌀과자나 막걸리 등 K-푸드가 확산되는 지금이 최적기"라고 설명했다. 2021년 한국산 쌀가공식품의 미국 수출액은 직전해에 비해 21% 증가한 7036만달러(약 978억원)다. 일본 수출은 13% 늘어난 1940만달러(269억원)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인수위원회 시절 의제매입세액 공제를 개편해달라는 업계 요구를 일부만 수용했다. 같은해 7월 공제율은 건드리지 않고 공제한도만 과세표준의 40~65%에서 50~75%까지 10%포인트 올렸다. 적용시기는 올해 말까지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영세 자영업자 대부분은 매출이 공제 한도에도 못 미쳐 혜택을 전혀 입지 못했다"면서 "공제 한도가 아닌 공제율을 높여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모두 비용이 절감되고 물가도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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