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가 사흘 뒤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의 막판 의제 조율을 진행 중이다. 안보와 경제가 핵심 의제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지만 과거사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책 등 예민한 사안이 다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4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오후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만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과 관련한 준비 현황을 논의했다. 대통령실은 "안보와 경제 등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들에 대해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설명과 함께 여론 등에서 제기하는 사안들을 짚지 않고 넘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을 조심스레 전했다.
현재로서는 한국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의 안전성 검증을 위한 한일 양자 차원의 과학 조사 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국제 전문가가 참여해 진행 중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니터링과는 별개의 작업으로 오염수 무단 방류를 우려하는 국내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 대통령실도 "철저한 과학적 검증, 위험하지 않다는 게 확인돼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어서다. '한국 측의 성의'로 성사, 마무리된 지난 3월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나갈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과거사 문제와 결부해 움직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오염수 방류를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로서는 무엇보다 최 근접국인 한국의 동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사죄와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역대 내각 계승' 이상의 메시지를 내놓는 방식으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오염수 방류와 엮지 않더라도 기시다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메시지 수위는 여전한 최대 관심사다. 한일 관계가 정상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역대 내각 계승' 정도의 표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는 물밑 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이러한 국내 여론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연구위원은 "한일관계 개선의 시작점은 어디까지나 강제징용 문제인데, (이번 회담에서)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이상하다"면서 "일본이 우호협력국이자 이웃나라인 한국에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위로와 공감, 당시 상황에 대한 인정의 말 정도는 나오길 기대한다"고 봤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G7 이후에 한국에 올 생각이었는데 (기시다 총리가 방한) 일정을 앞당긴 것은 주재국으로서 의제 설정에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클 것"이라면서 이번 답방에서 진전된 사과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3월 있었던 한일 회담 이후 지난달 치러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도 50%를 넘기는 등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반면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이후 '절반의 물컵'이 채워지지 못할 경우,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도 또 한 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번 방미 이후 약간의 반등세다. 기시다 총리의 역사 인식 수위에 따라 윤 대통령 지지율 곡선도 출렁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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