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실패하니 삶이 재밌지" 퐁피두도 반한 日 90세 예술가 할머니

1932년생 '쓰레기 예술가' 미시마 키미요 작가 이야기
90세 재평가에도 "재밌으니 괜찮다" 답변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술 한잔하다 보면 으레 하고 싶었지만, 현실에 밀려 포기하게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면 되잖아?"라고 말을 꺼내기가 어렵죠. 혹여나 새 결심이 실패라도 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뒤에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언론은 90세 나이의 예술가 할머니 미시마 키미요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빚만 지고 있었는데, 최근 해외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등 황금기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에도 "남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자유롭게 살기 때문에 매일 실패한다"고 유쾌하게 답변해 더욱 화제가 됐는데요. 오늘은 실패를 긍정할 줄 아는 미시마 작가의 '즐거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미시마 작가의 작품. 신문지는 도자기로 구워낸 것이다.(사진출처=미시마 작가 공식 홈페이지)

미시마 작가의 작품. 신문지는 도자기로 구워낸 것이다.(사진출처=미시마 작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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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생인 미시마 작가의 별명은 '쓰레기 예술가'입니다. 그림은 1960년대부터 그리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 폐신문지나 빈 깡통의 모습을 본뜬 도자기를 만들어 전시합니다. 그는 널브러진 신문지를 보고 "도자기는 깨지면 쓰레기가 되고, 신문도 읽고 나면 쓰레기가 된다"는 점에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구겨진 신문과 똑같이 생긴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키우거나 천장까지 늘어놓는 등의 독특한 방식을 취합니다.


단순히 도자기를 구워내는 것뿐만 아니라 얇은 자기에 신문이나 빈 깡통의 이미지를 그려 넣거나,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슬러그 등을 재활용해 거대한 쓰레기 더미 작품을 만들기도 하죠. 이 모든 방법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고안한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실패하면서 했다. 그래도 실패가 반대로 재밌더라"고 회상했습니다.


미시마 작가는 1986년 미국 록펠러 재단 장학금을 받고 1년간 뉴욕에서 체류합니다. 그곳에서도 작품의 아이디어가 될 박스, 신문 등 쓰레기만 열심히 모았다고 합니다. 공항 수하물 검사 때 "왜 쓰레기만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답변한 에피소드도 있었다는데요. 그는 이같은 '쓰레기 예술'을 하는 이유에 대해 "쓰레기는 그 땅의 기록이기 때문에 재밌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도쿄 모리미술관이 진행한 미시마 키미요 작가 인터뷰.(사진출처=모리미술관 유튜브)

지난해 도쿄 모리미술관이 진행한 미시마 키미요 작가 인터뷰.(사진출처=모리미술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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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전시를 진행하는 등 이름은 알려왔지만, 그가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도 최근 해양 쓰레기 등 폐기물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녀의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지난해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시마 작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품이 전혀 팔리지 않아 빚만 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예 대가들이 이름을 올리는 일본도자협회 상금을 받게 됐다”며 “나는 변함없이 일을 해왔을 뿐인데, 쓰레기에 주목하는 시대가 돼 평가가 붙어버린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퐁피두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2021년에는 세계 베테랑 여성 아티스트 16명의 작품을 모은 도쿄 모리 미술관 전시회에 일본 국적으로는 유일한 작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2년 마이니치 예술상에 이어 올해는 기후현에서 주는 예술상도 받았습니다. 지난달 26일에는 교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는데요. 다시금 황금기가 찾아온 셈입니다.


버려진 캔을 본따 만든 미시마 작가의 작품.(사진출처=미시마 작가 공식 홈페이지)

버려진 캔을 본따 만든 미시마 작가의 작품.(사진출처=미시마 작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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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존에 예술계가 서구권 백인 남성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굳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카타오카 마미 도쿄 모리 미술관장은 마이니치에 “오랜 세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계속 작품 활동을 한 고령의 예술가들이 지금 다시 평가받는 분위기”라며 “미시마 작가의 최근 재평가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 같다”는 재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주위의 평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재미있어서 지금도 매일 실패를 거듭한다.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일본 언론도 그의 '인생론'에 주목했습니다. 결국 실패를 긍정하고 즐길 줄 아는 점이 한 우물을 끝까지 파게 하는 힘이었다는 것인데요. 작품이 팔리지 않아 얼마 전까지 빚을 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인생의 고비는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바로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나 놀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항상 생각하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끝까지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해 화제가 됐습니다.


인생은 잠깐 와서 놀다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냥 즐기기엔 쉽지 않은데요. 실패도 성공도 모두 삶의 과정으로 여긴 90세의 인생론은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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