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1순위 인공지능(AI)을 육성하는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외부 투자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 의존도가 높은 스타트업 업계엔 후폭풍이 컸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사업이 존폐기로에 놓인 곳들도 나왔다. 정부가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꺼진 투자 심리를 되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22 인공지능 산업실태조사'를 발표했다. AI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 1915개를 전수 조사한 이 보고서에서 지난 3년간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답한 곳이 70%에 달했다.
AI 기업에 대한 투자는 단절된 상태다. 2020년 외부 투자 유치 건수는 571건이었다. 2021년에는 438건으로 소폭 줄었으나, 지난해에는 121건으로 급감했다. 2020년 대비 1/5 수준이다. 투자 절벽은 이제 시작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으로 전체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외부 투자 유치 방법은 ‘벤처캐피탈·엔젤투자’가 7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IPO(기업공개·상장·주식발행) 17.6%, ‘정부 정책 지원금’ 14.5%, ‘은행 등 일반 금융’ 12.1% 순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 의존도가 높은 AI 기업들에게 투자 시장이 위축된 최근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다.
AI 관련 스타트업의 재무 담당자는 “창업한지 7년이 됐지만 요즘처럼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경우는 처음”이라며 “지난해 상반기 이후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투자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투자자들이 찾은 곳은 AI다. 미래에 돈이 되는 산업은 결국 AI라는 판단에서다.
스타트업 ‘굳깅랩스’는 올해 네이버의 스타트업 양성조직 D2SF로부터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이 업체는 AI를 활용해 이용자의 표정과 모션을 실시간으로 3D 아바타로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AI 솔루션 스타트업 '코르카'는 70억원 규모의 프리A 투자를 유치했다. 기존 벤처파트너스 외에 KB인베스트먼트, 라구나 인베스트먼트가 신규로 참여했다. 이외에도 올해 투자자들이 찾은 곳은 대부분 AI 관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다만 AI 산업이라면 돈이 몰리던 과거와는 180도 달라졌다. 비주얼 AI 기술을 개발하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투자자로부터 지금 당장 AI로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다”라며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던 이들은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AI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내놨지만 부족하다는 평가다. AI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과 꺼진 투자 심리를 활성화할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정부는 최근 초거대AI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올해 3901억원을 투입을 시작으로 정책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 ▲AI 기술·산업 인프라 확충 ▲초거대AI 생태계 조성 ▲AI 혁신 제도·문화 정착 등을 위해 자금을 투자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크다. 상대적으로 작은 투자 규모와 업계의 고충이 반영되지 않은 지원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AI 관련 기업이 AI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2조7000억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67.7%는 인건비다.
외부 투자 의존도가 높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직접적인 투자가 시급하다고 토로한다. 최근 여러 스타트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임금체불을 걱정하는 곳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라며 “당장 AI 인재를 놓치게 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 심리를 살릴 정부 지원책이 없는 점도 문제다. AI 기업들은 인프라 부족보다는 투자 유치의 어려움이 큰 것을 기업 운영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2022 인공지능 산업실태조사’에서 AI 기업의 63%는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 답했다. 반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비중은 6%에 불과했다.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관계자는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이 외부 투자 의존도가 높아 투자 심리를 다시 살릴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투자 업계와 만나 투자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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