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압 중인 미국에서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고개를 떨구면서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유럽중앙은행(ECB)의 향후 금리 경로에도 이목이 쏠린다. 다음달 4일 통화정책회의에서 ECB가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나, 인상폭과 긴축 종료 시점을 놓고선 내부의 목소리가 엇갈린다. 다시 고개를 드는 근원물가가 변수다.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프랑수아 빌레로이 드 갈로 ECB 정책위원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열린 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금리인상 여정을 대부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달 회의에서 할 일을 결정하는 건 시기상조지만 금리를 인상할 약간의 길이 남아있을 순 있다"면서 "ECB는 필요하다면 차입비용을 정점에서 유지해야 한다. 금리를 더 높이는 것보다 오래 유지하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근원물가에 대해 "여전히 강하다"며 "이 궤적의 턴어라운드가 금리인상 중단의 방아쇠가 돼야 한다"고 경계감을 나타냈다.
빌레로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ECB의 공격적인 통화긴축 정책이 사실상 막바지에 진입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글로벌 은행 위기, 경기 침체 우려가 번지면서 ECB의 긴축 스텝 종료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 등 각국 중앙은행은 이미 금리인상을 멈춘 상태다. 반면, ECB는 지난해 7월 11년 만에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후 그간 열린 통화정책 회의에서 6회 연속 금리를 올렸다.
ECB 내부에선 긴축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온다.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손꼽히는 로버츠 홀츠먼 ECB 위원(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은 이날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인플레이션의 지속은 다음 달 50bp(1bp=0.01%포인트) 추가(인상)를 주장하고 있다"며 "우리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다음 달 이후에도 상당한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시각은 높은 물가와 경기 둔화, 은행 위기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ECB의 고심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변수는 앞으로 물가 흐름이 얼마나 둔화될 지다. 유로존의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6.9% 올라 5개월 연속 둔화됐지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5.7%로 유로화 도입 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전체 소비자물가)은 둔화하겠지만 근원물가에 대해선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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