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다이어트 후 '폭식', 뇌 회로 이상이 원인

미국 스탠퍼드 의대 연구팀 연구 결과
습관형성 관려 뇌 영역에서 변화 관찰

여성들이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흔히 앓는 폭식(bulimia) 등 섭식 장애가 뇌의 습관 형성 영역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 연구팀은 지난달 2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트랜슬레이셔널 메디슨에 이같은 내용의 연구 논문을 실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인간의 습관적 행동은 자동차에 타자 마자 안전 벨트를 찾듯 보통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의 연구에서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 선조체(striatum)라고 부르는 뇌의 특정 영역이 이같은 습관성 행동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폭식증. 자료 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폭식증. 자료 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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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쥐의 뇌에서 선조체와 연결된 영역을 주목했다. 이후 인간 뇌 지도 작성을 위한 프로그램인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에 참가한 178명의 고해상도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촬영 데이터를 사용해 연구에 들어갔다. 인간의 뇌에도 쥐의 선조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는지 찾아내는 연구였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감각운동 피각(sensorimotor putamen)과 연관 미상핵(associative caudate)을 후보군으로 포착했다. 연구팀은 이후 34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섭식 장애가 발생했을 때 감각운동 피각과 연관 미상핵이 활성화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이 결과 실제 폭식 등 섭식 장애를 가진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이 두 영역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회백질의 구조가 달라지고 감각운동 피각에서 도파민 신호의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또 이들의 뇌는 습관을 강화하는 감각운동 피각과 대뇌 피질 일부와의 연결성이 정상인보다 훨씬 강했다. 대신 전두엽 피질의 일부인 전측대상피질(ACC)과의 연결성은 약해졌고 안와전두피질-운동피질 사이의 연결은 증가했다. 로라 버너 미국 뉴욕 아이칸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로 감각운동 피각과 관련된 뇌 회로가 폭식 행동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가 추가됐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이같은 뇌 행동의 변화가 도파민과 연관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파민은 보상에 따라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연구팀은 폭식 등 섭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뇌가 보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변화가 일어났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이들의 뇌에 있는 감각운동 피각은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도파민 수용체가 더 적었다. 연구팀은 도파민 분비 감소가 도파민 수용체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숫자를 감소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인간의 뇌에서 찾아낸 감각운동 피각과 연관 미상핵이 실제 쥐의 선조체처럼 습관 형성과 관련이 있는 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경로가 열렸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섭식 장애ㆍ폭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연구를 주도한 앨런 왕 스탠퍼드 의대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로 심뇌 자극이나 경두개 자기 자극과 같은 기술을 이용해 섭식 장애같은 질병 치료에 특정 뇌 영역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많은 신경정신과 치료 기술이 뇌 회로를 직접적인 목표로 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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