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세포에 치료 물질을 직접 주입할 수 있는 '분자 주사기' 기술이 개발됐다. 유전자 변이로 발생한 암세포 하나하나에 약을 주사해 정상 세포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비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하는 한편 환자의 고통도 최소화할 수 있어 의학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 기술을 좀 더 정밀하게 가다듬어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연구팀은 지난 29일(현지 시각)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약물ㆍ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암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포 속 유전자 중 문제가 있는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해 잘라내고 정상 염기로 교체할 수 있다. 문제는 전달 기술이었다. 고장 난 유전자를 가진 세포에 정확히 효소를 전달해야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어렵다. 따라서 그동안 간, 눈, 혈액 세포 등 일부 손쉬운 부위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뇌ㆍ신장 등은 불가능했다.
연구팀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박테리아에 주목했다. 일부 특이 박테리아들이 분자 스파이크를 이용해 숙주 세포의 막에 구멍을 뚫고 독소 단백질을 전달해 세포를 죽이고 잔해물을 먹어 치우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지난해 생물 발광 박테리아의 일종인 '포토랍두스 에이심바이오티카(bioluminescent bacterium)'에서 이같은 분자 주사기 시스템을 발견해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했었다. 이 박테리아는 기생충인 '선충류'가 숙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는 도구다. 감염된 곤충의 세포 막에 구멍을 뚫어 독소를 전달해 죽인 후 잔해를 먹어치우는데 핵심 무기로 쓰인다.
연구팀은 이런 박테리아의 특성을 인간 세포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박테리아가 곤충 세포의 단백질에 독소를 주입할 때 주사기처럼 사용하는 꼬리 섬유(tail fibre)를 활용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단백질 구조 파악 프로그램인 알파폴드를 사용해 꼬리 섬유의 단백질 구조를 곤충 세포가 아니라 생쥐나 인간 세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재설계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해서 만든 '분자 주사기'를 통해 실험실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단백질 효소)나 암 치료 물질을 생쥐의 뇌세포 및 인간 세포에 직접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경우 현재처럼 유도물질(mRNA)을 이용하는 방법보다 5배나 더 많이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mRNA 물질을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연구팀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견했을 때와 유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도 박테리아의 면역 체계를 본 따 만들어졌다. 박테리아는 숙적인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크리스퍼(CRISPR)라는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는 효소를 분비한다. 이를 모방해 인간 유전자의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ㆍ편집할 수 있도록 만든 게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다.
아사프 레비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컴퓨터 미생물학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 초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연구 결과도 단지 소수의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되고 있고 아직 미생물 생태에서의 역할은 이제 막 이해되기 시작한 수준"이라며 "그러나 놀라운 연구 성과로 의학 전반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처도 "이 기술은 단백질 기반 치료 약을 투여하는데 새로운 길을 제공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선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최적화를 통해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의 편집에 필요한 요소를 전달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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