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더라도 여그(국민의힘 후보)는 아니여"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 23일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북은행 안행교지점 앞. 4·5 재보궐 전주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경민 국민의힘 후보 출정식을 지켜보던 한 전주시민이 이같이 말하며 자리를 떴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는 이날 김 후보에 대한 지원사격을 위해 전주 선거사무소를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출정식에는 김병민 최고위원과 정운천 의원 등 당내 호남 주요 정치인들이 동행했지만 민심은 쌀쌀하기만 했다. 박원규씨는 "이상직 의원 일로 아무리 (민주당에) 마음을 돌려도 국민의힘을 찍을 바에는 투표를 안 하고 만다"며 "국민의힘(후보가)이 된다면 나는 전주를 떠나지"라고 강조했다.
전주을은 다음 달 5일 치러지는 전국 재보궐 선거에서 유일하게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면서 치러지는 선거다. 민주당은 보궐의 책임을 지고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소속이던 임종엽·김호서 후보가 탈당해 무소속 출마했다. 임 후보는 완주군수를 지냈고, 김 후보는 민주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출신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전주시장 후보로 나서 15% 넘게 득표한 김 후보를, 진보당은 전북도당 민생특위 위원장을 지낸 강성희 후보를 공천했다. 이 밖에도 안해욱·김광종 무소속 후보도 출마했다.
4·5 재보궐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이날 전주시내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다수의 전주시민은 뽑을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민주당이 무공천한데다 정치 혐오가 커진 것으로 보였다. 전주 완산구 효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20대 권모씨는 "전주 토박이지만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면서 "투표는 하겠지만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전주 서부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60)는 "투표를 하지 않을 거다.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라 싫다"고 했다.
시장에서 30년 동안 좌판 장사를 하고 있다는 강모씨(81)는 "옛날에는 민주당 찍으려고 열심히 투표를 댕겼는데 이번에는 나오덜도 않는담서"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가 안 나오니) 신경 안쓰잖아 사람들이. 시장 사람들이 (후보들에게) 반갑게 안 하더라고"라고 귀띔했다.
싸늘한 민심의 배경은 팍팍한 지역경제다. 전북 최대 도시인 전주는 대기업이 한 곳도 없고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지역내총생산은 16조원에 못 미치며 광주의 절반 수준이다. 2010년 이후 인구가 꾸준히 감소했는데, 올해 65만명이 아래로 떨어졌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강모씨(57)는 "공장이 큰 게 하나 있어야 전주가 먹고 산다"면서 "여기는 물난리, 태풍같은 것은 없는데 공장이 없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으로 차들이 가잖아. 큰 공장만 있으면 여기가 진짜 살기 좋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누가 되든 먹고살기 바쁘다"고도 덧붙였다.
택시를 운전하는 유모씨(55)도 "먹고 살 거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단을 유치하는 것이다. 우리 어릴 때는 전주가 광주, 전주, 대전과 다 비슷했는데 지금은 반절도 안 된다"며 "일자리가 없으니 아이들도 졸업하면 떠나고 해마다 인구는 줄고, 같은 일을 해도 전주에서 하면 180만원을 받고 울산으로 가면 250만원을 받으니까 울산으로 간다"고 전했다.
전주 시내 곳곳에서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같은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로 인해 경제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전주 도심에서 만난 아파트 시행사업자인 박모씨는 "전주가 예전에는 6대 도시 안에 들었는데 인구가 너무 빠졌다. 인구가 100만명은 돼야한다"며 "지금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이렇게(개발)하면 미분양 사태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 후보들은 한 목소리로 "낙후한 전주 경제를 살려야한다"면서 제조업 유치와 수소도시 조성, 청년일자리 10만개 등 경제 공약을 내놓았다.
갈수록 악화되는 지역경제로 인해 호남 맹주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컸지만, 대다수 전주시민은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쳤다. 자영업을 하는 강모씨(44)는 "원래 뽑을 사람이 없으면 민주당을 뽑는다"며 "임정엽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원규씨(58)는 "임정엽을 뽑아줘야지. 일도 잘하고 당선도 될 것"이라며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것이 잠깐 그랬을지언정 막상 표심은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주M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9~21일 전주을 거주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에서 강 후보는 1위(25.9%)로 2위인 임정엽 후보(21.3%)보다 앞섰다. 시민들에 따르면 진보당 당원들은 몇 개월 전부터 새벽에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며 선거운동에 임했다고 한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유현경씨(61)는 "지금 그렇게 열심히 하는 후보가 없다. 당원들이 열심히 한다"면서도 "열심히 하더라도 예전에 이정희 당이었잖아"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선 무소속 출마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후보들에게 이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택시기사 박모씨(60)는 "내년이 선거니까 1년 기다렸다가 나오는 게 도리고 예의지, 1년짜리 하겠다고 둘이나 나와서 서로 싸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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