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적인 컬러를 때때로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했다. 내게도 도전이 되는 무대다." 차세대 디바로 꼽히는 소프라노 박혜상은 오는 3일(현지시간) 예정된 뉴욕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 무대를 이같이 소개했다.
전 세계 클래식 팬들로부터 "천사 같은 목소리", "독보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박혜상에게도 카네기홀 무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리사이틀을 앞두고 1일 오후 맨해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만난 그는 "카네기홀은 내가 음악을 시작하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할 수 있는 이는 몇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정말 감사한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리사이틀은 소프라노 박혜상이 서 왔던 기존 다른 무대들과도 확연히 차별화된다. 3월 '여성 역사의 달'을 기념해 음악사에 크게 영향을 미친 근현대 여류작곡가들의 작품을 조명한다는 특별한 테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혜상은 "여성의 모성을 보여주는 룰라바이(자장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현대곡까지 큰 도전이 될 것"이라며 "여성 작곡가들의 음악 위에, 매곡마다 감정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전했다.
프로그램 구성에도 직접 공을 들였다. 리사이틀 테마를 전해 듣자마자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합창음악을 선보여온 작곡가 우효원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의 대표적 합창곡인 '가시리', '아리 아리랑'이 소프라노 성악곡으로 편곡돼 박혜상의 목소리로 최초로 공개된다.
평소 우효원 작곡가를 좋아했다고 밝힌 박혜상은 "리듬, 박자, 컬러 등에서 (다른) 한국 작곡가들과 다른 색을 갖고 있다. 창에 가깝기도 하고, 성악으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기도 하다"면서 "그 색을 좋아하기에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기에 때때로 성악적인 컬러를 과감하게 빼기도 하고, 고함이나 애통한 부르짖음까지 곡 안에 담아냈다는 설명이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우 작곡가는 "박혜상은 내가 원하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소프라노"라며 "한국적인 것을 담고자 하는 음악의 방향이 같아 기대감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련되면서도 서정적인 목소리로 잘 알려진 '콜로라투라 리릭' 소프라노가 성악적 색채를 과감하게 버리는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해 박혜상은 "그래서 뭐(So What)"라는 생각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누구를 위해 나를 증명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순간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 작곡가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유명 성악가들이 비슷한 길을 밟아가는 것과 달리, 박혜상만의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작곡가는 "소프라노 박혜상이 다음 레벨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덧붙였다.
뉴욕한국문화원과 함께 이번 리사이틀을 기획한 한국음악재단의 정경희 회장 역시 "대중이 환호할 곡 리스트는 아니다. 미국인들로선 들어보지 않은 스타일의 곡이 불편할 수도 있다"면서도 "(박혜상의) 뚝심과 자신감을 봤다. 최고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소프라노 박혜상의 목소리로 이곳 뉴욕에서 울려 퍼질 또 하나의 '아리랑'(아리 아리랑)에 대한 기대감도 전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를린 슈타츠오퍼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 중인 박혜상은 이달 중순부터는 '팔스타프'의 나네타로 다시 링컨센터 메트 무대에 선다. 베르디가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다. 리허설로 매일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박혜상은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그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더 많은 분을 위해 길을 닦아야 한다는 마음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곤 한다고 밝힌 박혜상은 다음에 하고 싶은 일로는 "우효원 작곡가와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우 작곡가 역시 "새로운 소프라노의 장르를 개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가곡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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