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연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가운데 파산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들은 당장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다. 지난해 30조원의 적자를 낸 한전이 급격하게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근우씨(가명·50)는 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전에서 지급명령을 하고 폐문부재(문이 잠겨 있으며 연락이 안돼 전달이 불가능한 상황) 되니 바로 소 제기를 했다"며 "폐업 후 파산신청을 하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석 달 동안 약 200만원가량의 전기료를 연체했다. 지난달 가게 문이 잠겨 있었고 이를 전달받지 못하자 한전 측이 소송을 건 것이다. 김씨는 변제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사건번호까지 알려줬지만 소 제기를 당했다. 자영업자 김미순씨(가명·41)는 "파산 준비 중인데 한전으로부터 지급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스비 연체로 소송을 당한 경우도 있다. 자영업자 최은희씨(가명·47)는 "금액은 110만원 정도인데 개월 수가 많이 밀려서인지 꾸준히 납부하고 있는데도 소장이 날아왔다"면서 "이의 신청을 하고 기다렸는데 6개월 동안 아무 변동이 없다가 이달 초 변론 기일이 잡혔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에 전기·가스·수도·식자재 등 전방위적 물가 압력에 시달려 파산 신고까지 했음에도 공공기관으로부터의 소 제기는 과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심현철씨(48)는 "전기료, 난방비 등이 평소의 2배가량 올라 부담이 너무 크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정상화 수순이라는데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손님은 거의 반토막 수준"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영민씨(36)도 "강남은 임대료도 비싼 편인데, 모든 공공요금이 다 오르니 장사할 엄두가 안 난다"면서 "공공요금이 하나씩 단계적으로 올라야 하는데 한꺼번에 인상되니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2% 상승했고, 전기·가스·수도가 1년 전보다 28.3%나 상승해 별도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부터는 정부 조정에 따라 전기요금은 kWh당 13.1원 올랐다.
한전은 고객이 납기일부터 2개월이 되는 날까지 요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에는 전기 사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때 한전은 해지 예정일 7일 전까지 고객에게 해지를 예고하고 요금 납부 의무 이행을 촉구하게 돼 있다. 한전 관계자는 "법적 조치는 최후의 절차인 만큼 사업소별로 상황을 판단한 후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세심하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은 경영 지침상 지급명령과 소 제기를 하는 것일 수 있다"면서도 "정책당국이 미납된 공공요금에 대한 소 제기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파산 신청을 하는 것은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어 빚 갚을 능력이 안 된다는 의미인 만큼 공공요금 미납분에 대해 각각 소 제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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