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페타시스는 네트워크인프라, 서버·스토리지, 슈퍼컴퓨터, 우주·항공 등의 분야에 사용되는 반도체 필수 부품 '고다층 MLB PCB'를 빅테크 기업에 공급한다.(자료: 이수페타시스)
원본보기 아이콘[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이수그룹 계열의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기업 이수페타시스가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ChatGPT)' 사용량 폭증으로 증권가 관심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반도체 기초 부품인 PCB를 만드는 이수페타시스의 주가가 급등하고 시장의 관심을 받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수페타시스는 1972년에 설립, 50년간 PCB 관련 제품을 생산해왔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21.19%의 지분을 보유한 그룹 지주사인 (주)이수가 최대 주주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치면 26.61%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6.73%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종속회사로는 이수엑사보드와 미국과 홍콩 법인 등이 있다.
이수페타시스는 최근 구글·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MS)·인텔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빅테크를 고객사로 유치했다. 기존 고객사의 면면도 화려하다. 핀란드의 노키아, 미국의 시스코시스템스·주니퍼네트웍스·아리스타 등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들이 기존 고객이다. 글로벌 주요 통신장비 업체에서 미국의 주요 빅테크까지 고객사로 확보한 것이다.
이들 기업이 주문한 제품은 이수페타시스의 주력 제품인 고다층 MLB PCB다. 고다층 MLB 기판은 18층 이상의 다층 구조의 반도체 기판(Mult-Layer Board)을 일컫는다. 이수페타시스는 통신네트워크 장비와 서버 등에 들어가는 고다층 MLB를 주력으로 만든다.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늘면서 MLB 기판 수요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이유로 메타(페이스북) 등도 신규 수요처로 거론된다.
고객군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주요 고객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있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빅테크의 주문이 늘면서 장기간 주요 고객이었던 미국 2개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2017년 67%에서 지난해 30% 밑으로 낮아질 것"이라며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면서 회사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챗GPT와 같은 AI 모델을 훈련하고 실행하려면 대규모 데이터 저장 장치가 필요해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클라우드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AI 연산 속도 향상을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증가하면 연관 수주도 대폭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무역분쟁의 반사이익도 얻고 있다. 무역분쟁으로 미국의 통신장비 네트워크 업체들이 중국 기판 업체향(向) 발주 물량을 줄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으로 중국 센난(Shenan) 등이 만들던 MLB 기판 물량이 이수페타시스 쪽으로 넘어왔다. 기존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증가한데다 고객사까지 늘어나다 보니 가파른 성장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수페타시스는 이 분야에서 10%대 중·후반 수준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글로벌 최대 점유율(30% 이상)을 보유한 미국의 TTM테크놀러지에 이어 2위다. 중국의 센난과 WUS, 대만 GCE 등이 경쟁 기업들이다. 국내에 기판 업체 경쟁자로는 심텍·대덕전자·코리아써키트·해성디에스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대부분 PC 서버 전용 기판을 주로 만든다.
이수페타시스는 주문량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투자도 늘리고 있다. 지난해 4월에 540억원, 10월에 410억원 등 총 950억원을 투자했다. 고객사를 신규로 확보해 수주 물량이 늘어나면서 추가 투자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의 주문량 확대로 수주 잔고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79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2021년 3분기 말 수주 잔고 840억원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김지산 애널리스트는 "올해는 전공정 투자와 노후설비 교체 등 생산 효율성 향상을 위한 1차 투자를 완료하고 내년에는 신규 설비투자 중심의 2차 투자를 완료할 예정"이라며 "내년 말에는 늘어나는 수주에 대응해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생산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적도 개선 추세를 보인다. 지난해 3분기 누적으로 매출액 4770억원, 영업이익 86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매출은 38%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200%에 가까운 560억원 증가했다. 증권 업계는 이수페타시스의 지난해 한 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6500억원, 1200억원 내외로 예상한다. 매출은 약 40% 늘고 영업이익은 1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도 10% 수준에서 20% 근방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고다층 MLB 기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산량 이상의 발주가 들어와 가격 협상력이 개선됐다"면서 "수주 확대가 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매출과 수익성 개선에도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3.9배에 불과하다. 글로벌 고다층 MLB 공급 업체들의 평균 PER은 13배에 달한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미국 TTM과 대만 GCE의 PER는 각각 9.6배와 8.6배 수준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수페타시스가 사업 다각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는다. MLB 기판은 일반적으로 국내 PCB 업계에서 기술적으로 고난도 제품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시장 환경이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수주가 폭발적으로 늘고 실적이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기술력이 좋은 경쟁 업체나 경쟁 제품이 출현하면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회사인 이수엑사보드에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HDI반도체 공법을 적용한 SLP(Substrate Like PCB) 사업에 도전했고, FPCB(플렉서블 기판)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5년 연속 영업손실 기록하면서 사업을 철수했다. 적자 사업 철수로 이수페타시스의 연결 기준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현재 추진하는 신사업이 없는 상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수페타시스는 현재 수주와 실적이 개선되면서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력과 시간을 벌어놓았다"면서 "MLB 기판에 안주하지 말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투자해 미래 수익원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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