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고찰하는 일입니다. 아시아경제 독자들께서도 가끔 일상의 굴레에 서서 ‘복기’를 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달 초 제22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글 쓰는 의사’, 최상림 중앙대광명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글쓰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인물은 중학교 1학년 때 프로바둑기사가 된 사촌 동생이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최 교수는 대국이 끝나면 집에서 항상 자신이 뒀던 바둑을 복기하던 사촌 동생이 신기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어떻게 그 수를 다 기억하고 처음부터 다시 둘 수 있는가에 대해 늘 의아해했다”며 “아마도 한 수 한 수를 고심해서 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복기하는 과정이 프로바둑기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게 글쓰기는 사촌 동생이 늘 하던 바둑 복기와 같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도 이러한 성찰의 과정에서 나왔다. 최 교수가 쓴 ‘유방암 환자의 군가’는 시술을 받던 50대 유방암 환자가 군가를 부른 일화를 담았다. 대체로 영상의학과라 하면 여러 촬영 장비를 이용해 아픈 부위를 진단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최 교수는 실시간으로 환자에게 방사선을 투여하며 시술하는 ‘인터벤션(intervention)’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주입할 때 말초혈관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독한 항암제 때문에 혈관이 손상된다. 이로 인해 의료진도 매번 혈관주사를 하기 어려워져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암 환자에게는 ‘케모포트’라는 것을 삽입해 추후 항암제 주입에 사용한다. 비교적 간단한 시술로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최 교수에게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50대 유방암 환자는 그러한 그의 생각을 180도 바꾸는 계기를 선사했다. 케모포트 삽입을 위해 마취를 하고 기다리던 중, ‘멸공의 횃불’이 최 교수의 귓전을 때렸다. 갑자기 군가를 부른 이유에 대해 묻자 “군가는 무섭고 힘낼 때 부르는 거잖아요. 오늘 시술받을 때 부르려고 어제 아들에게 배워왔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어느 순간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위한 시술을 받는 서러움과 당황스러움에 우는 환자는 곧잘 봤지만, 군가를 부르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환자는 처음이었다. 최 교수는 “순간 나의 반복적인 일상의 행동이 환자의 일상을 깨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이 일을 계기로 의사의 일상과 환자의 비일상이 만나는 장소인 병원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됐고, 환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고 회고했다.
'유방암 환자의 군가'로 제22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은 최상림 중앙대광명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최 교수는 글쓰기를 "일상을 '복기'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사진제공=중앙대광명병원]
원본보기 아이콘이 일화를 글로 옮긴 최 교수의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건강한 육체로 합창하는 군가가 약한 육체의 여성이 홀로 부르는 노래로 전환되는 순간 발생하는 전복은 흑과 백처럼 갈라져 있던 두 사람을 뒤섞으며 ‘삶’이라는 하나의 색깔을 만들어 낸다. 지난한 치료 과정을 앞둔 환자의 마음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 의사의 일상과 환자의 비일상이 만나는 시공간으로서의 ‘병원’에 대한 성찰이 빛나는 글이다(출처 <청년의사>)”는 찬사를 받았다. 최 교수는 “솔직하게 쓴 글인데 과분한 결과가 있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최 교수는 바쁜 일상 속에서 글쓰기를 놓지 않고 있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3시간 정도 시술하며 환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환자의 짧은 말이나 행동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는 “작정하고 글을 쓰기는 쉽지가 않다”면서도 “어디 이동을 하거나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핸드폰 메모장에 가끔 글을 짤막하게 써서 저장한다. 짤막한 글을 토대로 살을 붙여서 작성한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대학생 때는 도서관 구석에 앉아 혼자서 책을 읽었다. 최 교수는 “글을 쓰고 반복해서 읽고 수정한다”며 “처음 글을 쓰고 바로 수정하지 않고 다음 날 읽고 어색한 부분을 수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그나마 자연스럽고 읽어줄 만한 글이 됐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 개인의 발전에도 최적화된 행위다. 최 교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일상을 복기하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글쓰기를 예찬했다. 최 교수는 자신의 수필 ‘유방암 환자의 군가’를 이렇게 매조졌다. “그럼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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